국어 순화 운동의 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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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9일 한글 창제 5백30돌을 맞는다. 매년 이날을 맞으면서 우리는 한글 창제에 뛰어난 업적을 쌓은 세종 임금과 당시의 집현전 학자들에 감사하게 되며, 아울러 일제 질곡 가운데서 우리말·우리 글을 지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 여러 선인들의 유덕을 새삼 우러러보게 된다. 특히 올해는 활발한「국어순화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맞는「한글날」이라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다.
4월16일의 박대통령 지시 이후 한글학회와 국어국문학회 등 학술단체는 물론 정부·사회단체·대학과 고교에 이르는 여러 기관이「국어순화운동」의 대열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은 우리국어의 발전을 위해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어 정화운동에 나선 단체들은 한결같이 우리말·우리 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높이고, 우리말 순화의 필요성을 일반 국민에게 알리는 데는 열심이었으나 국어순화의 구체적 방안에 관해서는 저마다 의견을 달리함으로써 운동자체의 효과를 감소시키고 있다.
이를테면 토박이말을 골라 쓰자는 한글 전용론 자들의 주장과 한자어가 많은 우리말의 조어력 향상을 적극 도모해야 한다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아직까지도 평행선을 이루고 있는 것은 그 한 예일 것이다.
실상 국어 순화운동의 본뜻은 우리말을 무분별한 외래어의 침식으로부터 지키며, 우리말의 내용과 어휘를 더욱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들며, 우리말을 일취월장하는 과학기술 문명의 추세에 뒤지지 않는 과학어·논리어로서도 손색이 없도록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국어는 민족의 공유재산이며 고유 민족정신의 반영이며 공동의 이상과 생활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니 국어 순화운동이 국민정신의 순화, 사회정화의 추구라는 점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그러므로 이 운동의 과정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한글만이 우리 글이라는 편협한 주장을 관철하려는 아집은 오히려 단합된 국어순화의 노력을 저해할 뿐이다.
우리말의 우수 이상을 차지하는 한자어를 도외시하고 한자와 한자말을 기피하는 이 같은 편협성은 마땅히 지양되어야 한다. 뿐더러 이미 우리말로 동화된 외래어는 우리의 언어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풍부하게 하는 것 인만큼 이를 무조건 배격하려는 태도는 지명한 일이 못 될 것이다. 또「국어순화」라고 해서 지나치게 외래어 사용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결코 옳다고만 하긴 어렵다.
그런 만큼 오늘 한글날을 맞이하면서 우리는「국어순화운동」이 무리 없이 효율적으로 추진되어야한다는 주장아래 한두 가지 제언할 것이 있다.
그것은 과거 본란이 누차 주장했듯이 국어 순화운동의 통일적이고 근본적 연구촉진 기구로서 대통령 또는 국무총리 직속의「국어연구소」가 우선 설치되어야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 순화운동은 학교 교육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를 연결하는 일관된 조직력으로 통어, 추진돼야 할 것이다.
뿐더러 가능한 한 토박이말을 즐겨 써야겠으나 억지 조어를 피하고 논리적 한자어의 활용도 병행해야 할 것이며 우리말의 풍부화를 위해 고어·방언·외래어의 적절한 사용이 다각도로 연구·심의 돼야 한다는 것이다.
530주「한글날」이 우리 어문정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된 것을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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