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적 관료 행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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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관료주의」라든가 「관료적」라고 말할 때 거기엔 이미 상당히 비난조의함축이 들어있다. 경도의 차이는 있지만 관료들에게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그들 특유의 행태가 있다. 그것은 국가의 공적업무를 수행한다는 임무의 특수성 때문에 조장된다.
국가의 업무는 다른 어느 일보다도 적법성과 일반성이 요청된다. 이러한 적법·일반성에의 요구는 공무원에게 봉사정신이 갖춰지지 않을 경우 행정을 형식주의와 획일주의로 몰아넣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모든 법해석과 행정처리가 국민위주가 아니라 관료편의로 흐른다. 이렇게되면 민원처리는 되는 방향이 아니라 안되는 방향, 또는 관료의 편의와 권한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일단 접어두는 습성이 붙는다. 바로 관료주의의 역기능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의 행정은 이러한 권위적 관료주의의 전통에 젖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권위주의적이고 수탈적이기까지 했던 봉건적 관료체제와 식민지 관료체재는 극단적 관료주의의 유산을 남겨놓았다.
해방 30여년간 행정조직과 기술에는 변혁이 있었지만 공무원의 의식구조는 크게 달라지질 못했다.
한 실증적 연구조사(본지4면 참조)에 의하면 한국관료의 권위주의적 성격(Authoritarian Personality)의 강도는 56% 이른다는 것이다. 이를 미국의 32%, 영국의 33.5%에 비하면 우리 관료의 권위주의적 성향이 얼마나 강한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러한 관료의 권위주의적 성격은 물론 관료제도 자체에서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의 총채적 분위기, 특히 가족의 내부관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가족을 포함한 일반사회의 권위주의적 행태를 내버려둔 채 관료의 권위주의적 성격만을 순화시킨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쉽다.
이 연구조사에 의하면 관료의 권위주의적 성격에서 숱한 관료주의의역기능이 발생하고 있다. 즉 권력에 과도하게 접근하려하고, 상사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면서 부하나 일반국민들에게는 지나치게 독단적인 태도를 갖는다는 것이다.
관료풍토가 이쯤되면 직업적 전문가의 조언이 존중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공무를 사리에 이용하는 경향마저 높아지게 된다.
서정쇄신 이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음을 감안하더라도 이들 조사결론은 국민일반의 일상적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관료의 권위주의적 성격은 한국관료의 특징적 성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료의 권위주의적 성격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우선 단기적이거나 편면적 노력만으로 성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은 분명하다. 행정부조리에 대한 추상같은 처벌이 눈에 띄는 부정을 줄이는데 즉효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추상같은 처벌이 무한정 계속될 수는 없을 뿐더러 다른 형태의 문젯점, 예컨대 무사안일 풍조를 유발할 위험이 따른다.
때문에 권위주의적 성격을 둔화하는 방안은 어디까지나 장기적이고 다면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가족내부 관계를 비롯해 사회분위기부터 권위주의적 계서관계를 벗어나 상호 보완적 관계로 탈바꿈해 가는 바탕이 마련되어야겠다.
이 바탕에서 점진적으로 행정의 지도·통제영역을 줄이고 민간의 자율적 영역을 신장하는 장기적 정책노력이 병행되면 한국관료의 권위주의적 성격도 상당히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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