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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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한「프랑스」사람이 어느 외국부인에게 물었다.
『「루브르」를 가 보셨어요?』
『아직. 하지만 「카르티에르」는 가보았지요』
필경 그 부인은 「루브드」도 「카르티에르」와 같은 유명보석점쯤으로 알았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사람들은 대개 그런 멍청한 대답을 하는 사람은 미국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각설하고-.
어느 나라나 외국사람에게 먼저 자랑하는 것은 그 나라의 고유문화다. 국빈이 와도 아무 스스럼없이 안내할 수 있는 곳은 그 나라의 박물관이다. 문화의 우수성은 차치하고라도,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훌륭한 자랑이 된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훌륭한 문화의 유산을 갖고도 그 긍지를 잊어버리는 수가 있다. 우선 그런 유산이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9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미술 5천년전」은 바로 그런 고유의, 훌륭한 우리 문화 유산들을 한눈에 보여 주는 전시회다.
미술품을 감상하면서 다만 감탄만을 일삼는 것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고미술의 경우는 더구나 그렇다.
한국 고미술은 한마디로 그 특색을 설명하기는 힘들다. 우선 양식에 있어서도 한가지로 집어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그 바탕에 흐르는 한국적인 양식은 자연주의로 설명하고 있다. 대상물을 재현하는데 있어서 「있는 그대로」를 나타내려는 「모티브」가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 민족의 순진하고 정직한 심상을 보여 주는 것도 같다. 중국이나 일본의 고미술품들이 상징적이고 표현주의적인 경향을 보여 주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고려청자의 섬세한 아름다움, 이조백자의 소박성과 안정성은 그 시대 우리선상들의 생활태도와도 관계가 깊을 것 같다. 이런 양식은 어디서 모방한 것도 아니고, 다만 우리 선상의 생활 속에서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다. 진경산수를 묘사한 그림들의 대담한 필치들도 역시 우리의 핏속에 맥맥히 흐르고 있는 어떤 기백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닐까. 한편 풍속화에서 엿볼 수 있는 한국적인 정취같은 것도 어딘지 인간미가 풍긴다.
새삼 「5천년전」을 보며 아득한 우리 선상들의 푸근한 맥락을 짚어 보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3복중 모처럼의 기획전에서 더위를 잊어 볼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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