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협력 없이는 북괴, 외채해결 못한다|해외경제연구소 「세미나」…김연수 박사(서독 「킬」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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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해외경제연구소(대표 배의환)가 주최하는 『북한의 대외경제정책과 공업화 전략』에 관한 「세미나」가 27일 무역회관 회의실에서 열렸다. 다음은 이날 「세미나」에서 김연수 박사(서독「킬」대 교수)의 『75년 이후를 중심으로 본 북한의 대외경제정책』이란 주제발표 내용의 요지. <편집자주>
59년 중·인 국경분쟁이 발생한 당시 「흐루시초프」가 『소련 정부는 중공과는 물론 인도와도 우호적인 국가』라는 주장 하에 중립적 태도를 고수하자 김일성은 이에 반발, 반인도 친중공 노선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소련은 북괴의 이른바 7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지원하기로 협정되었던 「경제원조」를 일종의 정치적 압력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62년 소련의 대북괴 농기구공급이 부진하자 김일성 정권은 쌀을 「네덜란드」로 수출, 그 대금으로 「프랑스」에서 「트랙터」를 수입했는데 이것이 북한의 대서구 무역의 시발이었다.
최근 북괴의 경제는 61년에 비할 바 못될 정도로 악화되었으며 75년 이후부터 북괴의 경제력은 국제수지 적자로 인해 대외채무상환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특히 북괴의 무역상대국들은 그동안 중단됐던 무역재개의 전제조건으로 채무상환을 강요함으로써 북괴의 대외경제정책은 완전히 침체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북괴의 대외경제정책이 완전히 실패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원인이 있다.
첫째, 비동맹국가를 중심으로 한 대A·A제국 외교강화를 목적으로 한 무리한 재정지출.
둘째, 과도한 현대무기의 국산화정책에 의거, 국가예산의 35% 이상을 국방비에 지출한 점.
세째, 경제력을 도외시한 무리한 자본 및 기술도입.
넷째, 비철금속 등 중요수출상품 가격의 폭락 및 소련산 원유수입 값의 대폭적 인상 등으로 인한 추가재정부담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최근 북괴는 박성철의 총리취임을 계기로 종래 정치외교에서 경제외교, 특히 무역거래 확대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대공산권 무역에 못지 않게 대자유권 무역확대에도 주력, 서방 선진국은 기계설비 및 기술 등의 수입시장으로, 산유국은 차관도입 등 경제협력 시장으로, 비산유국은 수출시장으로 이용하려고 시도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북괴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경제정책을 펴 나가야만 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사경에 빠진 북괴의 대외경제정책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정치적 사실은 대외경제정책의 성공적 수행이라는 문제와 관련, 다시금 친소정책의 채택을 「강요」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첫째, 대외경제정책의 성공여부는 대외채무해결과 직결된다고 볼 수 있겠는데 현재 17∼20억「달러」에 달하는 북괴의 외상 가운데 7억「달러」가 대소채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의 협력 없이는 북괴의 외채해결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북괴는 소련의 경제적 압력 목표인 「과격한 군사적 외교정책」을 약화시키는 댓가로 소련 등을 비롯한 외국의 채무상환 기간을 연기 받고 상환조건을 수정하여 외채문제를 단계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교역관계를 개선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둘째, 대소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61년의 47.8%에서 71년엔 55.2%로 상승하였다가 74년엔 25.5%로 하락하는 등 친서방 무역정책을 시도해왔으나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북괴는 다시 대소무역을 강화하여 무역의 질적·양적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대서방 무역을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할 입장이다.
결론적으로 북괴는 현 싯점에서 보아 대서방 교역능력이 너무 미약하기 때문에 「정치적 무역관계」를 무리하게 지속하기보다는 우선 소련의 후원 밑에 무역능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물론 소련의 대북괴 경제원조 능력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북괴로서는 현재 또 다른 선택의 자유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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