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왕산 지붕 바위|박술음 <외국어대학장·서울 출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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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교직에 갓 나갔던 젊은 시절, 독서욕을 흠씬 만족시킬 수 있는 여름 방학이 오면, 나는 몇 해를 두고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인왕산의 성터를 타고 올라 지붕 바위를 거의 매일 찾아가서는 그 밑에서 책도 읽고, 잠도 자고, 도시락밥도 먹고, 일광욕까지를 즐겼다.
성터를 넘어 50m쯤 내려가면, 비탈져서 어른거리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곳에, 무악재를 내려다보며 이 바위는 엎디어 있다. 조개가 입을 벌린 듯 아래는 흙과 풀이고, 위쪽은 앞이마를 번쩍 들고 박혀 있는 편편한 그 모습이 지붕과 비슷하다. 그리하여 내가 내 나름대로 붙여둔 이름이 바로 지붕 바위다.
풀을 뽑고, 바위 밑 흙을 고르고, 마른풀과 잎을 모아 깔고, 소독약을 둘레에 뿌려 벌레들의 침범을 막으니, 돌 베개 베고서 낮잠도 자고, 비바람도 바위 밑에서 피할 수 있었다.
여기에 보따리를 풀어 참고서와 방석을 제자리에 놓으면 해저물 때까지는 온통 내 세상이다. 격에 맞지 않는 『야호!』 외침도 들리는 듯 마는 듯. 위에서의 부질없는 돌팔매에도 지붕 위는 끄떡없다.
경개 좋고 이름난 산천만이 사람을 깊게, 넓게, 시원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
산 밑 서쪽으로 넓게 둘러친 붉은 큰 담의 교도소는 그 안팎의 어둠과 밝음을 또렷이 말하여 주고, 지금은 벽제관으로 옮겼지마는 홍제동의 화장터가 자리잡고 있을 무렵엔 뭉게뭉게 잇닿는 그 누런 연기의 누린 냄새가 인생은 어디서, 어디로, 어째서 흐르는가의 철학을 일러도 주는 듯. 그 뿐이랴. 지붕 바위 밑에서만 보이는 좁은 하늘의 변화일망정 역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 여러 가지 모양의 신비로움은 견줄 데 없다.
그렇기에 「블레이크」는 읊었나 보다.
모래 한 알에 세계를 보고
들꽃 한 송이에 하늘을 알며,
주먹 안에 무한을 담고 순간에 영원을 간직하다. 라고.
이렇듯 감회 깊은 지붕 바위엘 6·25사변 뒤엔 그만 찾지 않았다. 그 무렵에 하도 많은 생명이 그 언저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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