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앞섬마을 참변…아물지 않은 상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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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눈깜짝할 사이에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도리 앞섬마을(전북무주군무주면) 나룻배 전복사고는 갖가지 뒷 얘기로 주민들의 슬픔을 더해주고 있다.
아침마다 손목을 잡고 뱃전에 뛰어오르던 친구 12명을 잃은 무주국민교 1천2백여 어린이들은 9일부터 아침마다 주인없는 책상에 흰장미 열두 송이를 얹어놓고『그토록 기다리던 단비가 이처럼 끔찍한 쓴 비가 될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떨구었다.
특히 설상석(10)·호석(10·사촌간)군 형제를 잃은 4학년 장미반은 담임 정재득교사(28)의 주도하에 30분간 묵도를 하며 귀염둥이 형체의 얼굴을 가슴에 그렸다. 5학년 장미반 박정수군(12)은 사고 당시 헤엄쳐 나올 때『나도 데려다 달라』며 허우적거리다 숨진 같은 반 권미옥양(11)의 얼굴이 어른거려 연필을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맏딸 경옥양(8)을 데리고 나룻배에 탔다가 사고가 나자 엉겹결에 남의 자식 8명만 건져주고 자기 딸은 못 구했다는 권순장씨(39·내도리)는 사고 후 사흘이 지난 11일에도 마의 나루터에 나와 앉아 딸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로 탄식했다.
왼쪽팔이 없는 상이용사 양기원씨(37)는 졸지에 두 딸 명난(13·6년) 명희 (8·2년)양을 잃고 넋 나간 사람이 되어 시체만이라도 찾겠다며 거짓말같이 잠잠해진 산기슭을 헤집고 다녔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쳐야겠다』는 앞섬마을 주민들은 수십년 전부터 오늘의 비극을 예견했으면서도 방치해 둔 당국의 행정부재를 탓하고『다시는 이같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아야겠다』는 굳은 결의를 보였다.
문제의 나루터를 건너 무주국민교에 통학하는 어린이는 모두 1백68명. 무주국민교는 그동안 여름철이면 몇번이나 나루터에 물이 불까봐 단축수업을 해야했으며 이곳에 다리를 놓아달라고 도 교육위원회에 수차 건의했다고 한다.
앞섬마을의 김기중씨(35)는『이 마을이 전북·충북·충남 등 3개도 경계에 위치하고 있기때문에 행정적인 푸대접을 받아왔다』고 지적, 『예산 타령만 하지말고 당국은 다리를 놓아주어야 한다』고 언성을 높였다. 적어도 방우리∼내도리 사이 70m에 수로를 뚫어 마을을 휘감는 강줄기를 합류시키는 직강공사를 해야한다는 것이 주민들의 공통된 요망이다.

<무주=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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