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 추방 누가 해야 하나… 아쉬운 지도층의 분수 지키는 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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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2월 대구에 내려갔다가 『성실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를』이란 커다란 현수막이 길거리에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잘 산다는 의미>
아마도 정의가 깃들여 성실한 사람이 잘사는 사회, 인간의 존엄성이 최대한 보장되는 사회를 염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흔히들 「잘사는 사회」를 말할 때 물질적 풍요만을 너무도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 요사이 많이 들리는 『잘 살아 보세』라는 노래 가사 내용도 너무 물질적인 면만으로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없지 않은 것 같다.
옛 선비의 청빈을 굳이 고집할 시대는 이미 지났다 하더라도 생존을 위한 부 이상의 물질만능 사상은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치부를 위한 소위 권력형 부조리의 동원 등은 심각한 문제다.
보석과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이 「잘사는 것」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풍조가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 자꾸만 널리 퍼져 가는 것 같다.
반면 좀 어렵더라도 참되게·의롭게·성실하게 서로를 도와 가며 사는 게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숫자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되는 것만이 결코 잘 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물질적 부를 무조건 거부하자는 것은 아니다.

<부조리는 불신을>
문제는 근래 사회악의 하나로 강조되는 부정 불부나 권력형 부조리가 치부와 함수 관계를 갖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후진국일수록 권력형 부조리가 많다고 한다.
무슨 이권이 나서면 자기 권력이나 지위를 최대한 발휘하여 결말을 내는 것이다.
우리는 월남 사태에서 부정 부패의 산 교훈을 너무나도 똑똑히 체험했다.
부조리가 만연된 사회에는 불신이 팽배하게 마련이고 국론이 분열되며 그 결과는 마침내 국가를 멸망으로 이끄는 요인이 되고, 공산주의가 침투하는 지름길이 됨을 보았다.

<구석에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 최고 지도층에서는 『부정 부패와 부조리는 공산당보다도 더 나쁜 것』이라고 강조했고 그 발본색원을 거듭 다짐했다.
그 같은 지도층의 소신은 모두에게 다시없이 반가운 것이었고 그 과감한 추진에의 기대는 아직도 변함이 없다.
확실히 부조리 문제는 전보다 눈에 띄게 나아져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 구석구석의 부조리들이 말끔히 씻어졌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물론 사회 깊숙이 구조적으로 박힌 부조리 현상이 하루아침에 발본색원되리라는 기대는 금물이다. 좀더 시일이 걸리겠고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할 것이다.

<민을 위한 수명>
늘 되풀이되는 얘기지만 부조리를 없애는 지름길은 지도층의 솔선 수범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부정 부패의 추방도 권력형 부조리의 발본색원도 서정 쇄신도 모두가 지도자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솔선 수범이 앞서야 된다.
모든 지도자의 권력과 권위는 오직 국민에 봉사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목」(수령) 은「민」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민」이 「목」을 위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정약용의 『원목론』이나 분수를 지키는 생활 태도가 누구에게나 새삼 절실한 것 같다.【이계창 신부 <천주교 대전 정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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