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의회의 섬유수입 규제입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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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본 의회가 견직물의 직접 수입 규제를 위한 입법을 하려는 것은 정치적 배신이 아닐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지난달 한일 생사회담에서 견직물 수입에 대한 양적 규제 이외에 또 다른 규제 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우리측이 작년 수준의 견직물 수출이란 새로운 양적 규제를 받아들여 생사 분규를 해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1백% 순견직물의 수출량은 금년 4월부터 내년 3월까지 3만3백짝으로 결정되었던 것이다.
우리로선 견직물을 새로 규제 대상으로 삼는데 찬성할 수 없었지만, 한일간의 분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양적 규제를 받아들이는 어려운 용단을 내렸었다. 이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커다란 양보였다.
이렇게 우리가 큰 양보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일본 의회가 또 다른 직접 수입 규제 입법을 한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본 중의원은 견직물의 수입 가격과 일본 상품 가격의 차액을 수입 과징금으로 강제 징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 임시조치법을 가까운 시일 안에 통과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한국산 견직물의 대일 수출이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은 말 할 것도 없다. 일본의 수입상들이 외국에서 견직물을 수입하는 주된 이유가 국내가격과 수입가격의 차액에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차액이 모두 강제 징수된다면 수입상들이 수입해야 할 유인은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되면 양국간의 규제 협정이나 규제 물량도 아무런 뜻이 없어지고 만다. 결국 나쁘게 말하면 일본은 정부가 협상을 통해 관철하지 못한 강력 규제를 의회의 일방적 입법 조치로 이루려 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대외 교섭을 해서야 어찌 일본 정부를 상대할 수 있겠는가. 일본 정부 당국자를은 의회가 하는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발뺌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 당치 않은 말이다.
국내 정치 과정에서 의회와 행정부의 해가 상충되는 수는 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행정부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외교 교섭을 할 때에는 의회와 국민 여론을 십분 참작하여 교섭에 임하는 것이다. 교섭 상대방도 상대국 정부와의 교섭이 그 나라 전체 의사를 대표하는 것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교섭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외교 원리가 무시된다면 국가간의 외교 교섭이란 아무 의미도 없어진다. 일본 정부는 의회의 일방적 조치라고 발뺌하기에 앞서 의회에 규제 입법을 않도록 설득하는데 성의를 다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가 만일 이러한 설득에 실패한다면 이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정치적 위약임에 틀림없다. 일본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 우리로서도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더구나 한국과의 교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보고 있는 일본이 우리에게 특별히 유리하지도 않는 합의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이는 도덕적으로도 용서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자유무역과 창도 자연해 온 일본 스스로가 「가트」와 자유무역의 정신을 짓밟는다는 것 이상의 중대 문제다.
일본이 이러한 배신적 행위를 즉각 중지할 것과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강력한 대응 조치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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