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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 규제 칼자루 쥔 산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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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이태경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거나 다름없죠.” 산업통상자원부가 최근 만든 ‘인증 규제 개선 태스크포스(TF)’에 대한 인증 전문가 A씨의 코멘트다. 외부 인사 없이 산업부 직원 4명으로만 구성된 TF의 맹점을 지적한 표현이다. 그는 “산피아(산업부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에겐 인증제도가 밥그릇인데, 스스로 권한을 줄일 리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런 냉소적인 반응의 책임은 전적으로 산업부에 있다. 국내 인증마크 136개를 총괄하면서도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 해서다. 기업이 인증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산업부는 인증 규제 개혁을 약속했지만 막상 대책은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개혁의 핵심인 인증마크·인증기관 통합은 건드리지 않은 채 곁가지 정책만을 내놓은 탓이다.

 원인은 산피아 낙하산이다. 인증마크를 줄이고 인증기관을 합치면 산피아가 재취업할 수 있는 자리가 그만큼 줄어들 걸 우려해서다. 그동안 산업 분야 19개 인증기관의 기관장·부기관장은 산업부 고위 관료가 독식하다시피 했다. 현직 관료는 기관장이 된 퇴직 선배에게 많은 인증 권한을 주고, 대신 기관장은 현직 관료가 퇴직할 때 끌어주는 식이었다. 이런 커넥션은 다른 부처가 산업부의 인증 개혁 요구를 거부하는 명분이 됐다. “산업부도 인증마크나 기관을 안 줄이는데 우리가 왜 줄이느냐”고 항변하면 머쓱해진 산업부는 슬그머니 개혁의 칼을 내려놓았다.

 이젠 바뀌어야 한다. ‘인증 권력’ 때문에 기업들이 보는 피해가 너무 크다. 가장 좋은 해법은 인증 컨트롤타워인 산업부의 솔선수범이다. 산업부 관할의 인증마크를 확 줄이고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지 않을 것을 결단해야 한다. 그러고 나면 자연스럽게 다른 부처가 인증개혁에 동참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면 우선 인증 규제 개선 TF를 기업인·전문가 같은 외부 인사에게 개방해 강력한 개혁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바로 산업부가 산피아라는 오명으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이다.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