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상품과 인종의 「바자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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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섬들로 이루어진 「바레인」토후국의 가장 큰 섬인 「바레인」섬에 있는 서울 「마나마」 는 석유로 흥청거리기 때문에 거리에는 수많은 신형 차들이 물밀듯이 쏘다니는가하면 세계 각국사람들이 보였다. 몇십 나라 사람이 들끓고 있으니 국제도시다우며 비록 그 규모는 작지만 「유럽」의 「무드」를 방불케 한다. 그리고 가게마다 세계각국의 상품들, 특히 일제의 녹음기와 「라디오」, 영제의 홍차, 「프랑스」제의 화장품을 비롯한 오만가지 물건들이 눈에 띄었으나 우리 나라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은 서운했다.
그런데 「바자르」(시장)엔 여러 나라 사람이 들끓으니 『상품의 「바자르」』와 아울러『인종의 「바자르」』라는 느낌을 준다.
이 나라는 물론 「이슬람」교를 믿고 있지만 정통파인 「순니」파와 개혁파인 「시아」파의 두 파가 거의 절반씩을 차지하고 있어 시장에 나온 여자들 가운데는 「베일」을 쓴 예스러운 모습이며 화장을 화려하게 하고 양장을 한 멋진 모습들이 섞여 있어 매우 다양해 보인다.
모르긴 해도 여자들의 「베일」은 차차 사라져 가는 것이 세계적인 것 같다. 이웃 나라 「이란」은 개혁파인 「시아」파의 「이슬람」교를 믿고 있어 「베일」을 쓴 여자를 볼 수 없을 만큼 개화하였듯이 이 나라도 진취적인 여성들이 많아서 아무런 장막을 드리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마침 시장에서 사귄 어떤 부인에게 사진의 「모델」이 좀되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딴 남자에게 자기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게 하는 것은 남편에게 죄스러운 일이니 그것만은 안되겠어요』한다. 얼마나 절도가 있는 마음씨인가 비록 이들의 생활양식이 「유럽」화하고 더욱 부강해지더라도 「이슬람」교의 「코란」의 계율이 중용 못지 않은 생활의 이지를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들의 종교가 얼마나 훌륭한가를 느낄 수 있었다.
「바레인」섬은 「아라비아」 사막에 딸린 지대여서 서울 「마나마」도 물이 귀하여 물장수들이 판을 친다. 우리 나라 북청 물장수가 이 나라에 온다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든 여인숙은 물이 노래서 침구들을 제대로 빨지 못했는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가뜩이나 값싼 방이니까 그렇겠지만 「호텔」도 우리 나라처럼 물을 흔히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막의 나라들을 쏘다니느라고 제대로 몸을 씻지도 못했을 뿐더러 옷이 온통 땀에 젖었기에 목욕과 세탁을 하려고 했으나 이런 값싼 여인숙에선 물이 없어 할 도리가 없다. 그래서 이왕이면 기념으로 「페르샤」만에서 헤엄칠 겸 바닷물로라도 옷을 빨 양으로 바닷가로 나갔다. 오만가지 역사를 아로새긴 「페르샤」만의 바닷 빛은 쪽빛으로 물들어서 유독 회고적인 「이미지」를 자아내었다.
우선 때가 묻고 땀이 젖은 옷들을 바닷물에 헹구어 사장에다 널고 있는데 사람들이 가까이 와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짠 바닷물로 빨래를 하는 것이 미치광이 짓처럼 보인 모양이다. 더구나 웬 낯선 나라 사람이 그나마도 꿰맨 헌 옷들을 말리고 있으니 외국 걸인처럼 보였기 때문인지 유심히들 보고있다.
나는 헤엄치기 위하여 바닷물에 들어갔다. 지금의 계절은 가을 날씨 같아서 이 「페르샤」만에서 헤엄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유독 나만이 헤엄을 치니 더욱 미치광이로 보였던지 사람들이 모여들어 나의 거동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바레인」섬의 바닷가는 「페르샤」만에서도 가장 이름높은 천연진주의 명산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내가 지금 헤엄치는 바닷가에도 행여 진주가 있지나 않을까 하여 바다 밑까지 깊이 내려가 보았다.
잠수구를 비롯한 연모 없이는 알아낼 재간이 없었으나 혹 손에 잡히지나 앉을까하여 여러 번 물 속에 들어가 바다 밑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다가 바닷가로 나왔더니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진주조개를 채취하려고 물 속에 곤두박질하여 들어가는 줄은 모르고 도무지 나를 미친 사람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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