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 정치 좌우하는「프리모지」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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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사적인 유대관계로 서로 엇갈린 정치노선을 걷고 있는「세니·프리모지」민주당당수와「쿠크리트·프라모지」「타이」수상형제는 지난 30년간「타이」정계에 6번이나 바꿔가며 진출, 여러번 위기에 빠진「타이」를 이끌어왔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형「세니」공(70)은 이제 3번째 수상이 될 채비를 갖추고 있으며 동생「쿠크리트」수상(65)은 패배 속에서도 위엄을 잃지 않은 채 언젠가 다시 재기할 것을 기대하며 조용히 퇴진, 사생활을 즐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변호사「바이얼리니스트」·작곡가·역사가·시인이자 주미대사를 지낸「세니」공은 2차 대전 직후 4개월반과 작년 1월중의 8일간 등 2번의 짧은 수상경력을 갖고 있는데「업저버」들은 그의 단명이 행정적 수완의 결핍 때문인 것으로 보고있다.
이에 반해「쿠크리트」수상은 소설과「논픽션」등 30여권의 저서를 내고 은행가 및 실업가로서 막대한 재산을 모았는가 하면 언론인·「타이」고전무용가로서 명성을 떨쳤고 미 대학에서 수학한 후에는「타이」를 진정한 입헌군주국으로 발전시키려는 세대 속에서 정치가로 성숙했다.
「프라모지」형제는「타이」의 핍박받는 농부들의 처우개선, 점진적인 사회개혁, 정부안의 불매근절 및 국제관계에서의 중립을 표방하고 있는 반공인사들이다. 그러나「쿠크리트」수상은 중공과의 유대를 증진시킬 필요성과「인도차이나」공산국가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조치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고 말한바있다.
2차 대전 당시 주미대사로 있던「세니」공은 미국에 대해 선전포고하라는 일본식민정부의 명령에 불복, 오히려 반일저항운동단체를 조직하여 전후「타이」의 평화체제 복귀를 가속화 시켰다. 그는 종전직후 인기의 여세를 몰아 수상직에 올랐으며, 1946년 창당된 민주당에 부총재로 입당, 68년 이후 당수직을 맡아왔다. 「쿠크리트」수상은「옥스퍼드」대학졸업 후 공무원이 되었다가 곧 은행가로 전향했으나 전후 한 때 다시 정계에 발을 들여놓고 신문발행인과 교수를 겸직했다.
그는 73년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학생봉기 이후 국회에서 강력한 실력자로 부상, 마침내 정권을 잡아 사회적 긴장과「인도차이나」공산국가들로부터의 압력 속에 14개월간「타이」를 이끌어왔다.
이번 선거를 통해「타이」의 좌·우익간의 불화는 결코 해소되지 않았으며 고질적인「타이」사회의 부정도 제거되지 않았다.
일부 비평가들은「세니」공의 정직과 성실성을 인정하면서도 10세기「샴」왕가의 후예인 그가 도시와 농촌의 가난한 사람들이 겪고 있는 역경을 진정 이해하여 그들의 구제를 의해 신속한 조치를 취할지 의심하고 있다. 【AP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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