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로 줄서기 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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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내무부는 올해 도시질서확립을 위해 『차례로 줄서기』·『휴지 쓰레기 안 버리고 침 안 뱉기』·『고운말 쓰고 예의 지키기』등의 3대 질서운동을 벌인다는 것이다.
이 운동은 내무부가 도시새마을 운동지침으로 확정, 『명랑하고 품위 있는 새 시민상』을 도시민들에게 심으려는 기초 사업으로서 전국적으로 추진하리라는 것이다.
이 운동을 위해 당국은 3월말까지 줄서기 시설과 휴지통·차선·횡단보도표지등을 일제 정비하고 4월의 집중계몽을 거쳐 5월1일부터는 선도와 단속을 실시하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또 도심권주거지역에서 『이웃을 익히며 서로 돕기』, 상업지구에선 『상거래 질서확립』 을, 교외권에서는 『자립마을 가꾸기』등의 추진방안도 마련했다.
내무부의 이 같은 도시질서확립운동방안은 일견 도시민의 생활에 밀접히 접근하는 지표라는 면에서 행정의 밀착화를 시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더군다나 이 운동의 추진에 있어 관주도를 벗어나 시민 자율에 의한 민주역량 배양의 방향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을 주목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도의를 바탕으로 공익과 질서를 지키며, 명랑하고 품위 있는 생활을 영위하는데 가장 비근한 행동근거가 이런 것이라고 볼 때 이를 지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길거리에서나 마구 가래침을 뱉고 남들이 줄서고 기다리고 있는데도 예사로 새치기하는 신사, 몰염치하고 얌채같은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일상적으로 목도하고 있다. 이들의 행동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실상 시민적 협동의 윤리와 사회적 믿음의 관계를 밑바닥에서부터 깨뜨리는 자들이라는 점에서 양식 있는 시민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반시민적 군상인 것이다.
영국여행자가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법의 지배가 어느 나라보다도 철저하여, 가장 모범적인 민주국가로 손꼽히는 이 나라에서 가장 인상적인 현상이 바로 이 줄서기(Queing)의 체질화에 있음은 결코 이유가 없지 않다.
다만 그 취지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더라도, 이 같은 시민질서운동을 관이 표면에 서서 직접 추진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문제가 없지도 않다. 그것은 『「차례로 줄서기』나『고운말 쓰기』등의 기준이란 필경 「에티켓」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전한 생활윤리가 지배적이고 사회체제 자체가 정상적으로 질서 있게 움직이는 곳에서는 그것은 당연한 습관의 영역에서 지켜져야 할 성질의 생활규범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규범의 영역은 어디까지나 양식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운동이 되어야 마땅하다.
특히『고운말 쓰고 예의 지키기』와 같은 전통사회의 습속과 체질이 다분히 침투된 생활문화의 측면에까지 행정관청의 단속이 가해지게 된다면 이런 「운동」이 애초에 기대하였던 「명랑한 사회」보다는 죄 없는 시민들 마저『얼어붙고 떠는 사회』가 안된다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품위 있는 생활, 사람이 사람답게 살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이 운동이 추진되는 것이라면 관제보다는 시민의 자율과 자발성의 제고가 가장 중요한 지도원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물며, 일반서민들에게 자칫 폭언과 거친 행동으로 군림한다는 비평을 받기 쉬운 일선경찰관들이 이 같은 시민질서의 덕목을 강조한다는 것은 그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시민의 심금을 울리고 밑바닥으로부터의 동감을 얻어서 이들이 자발적으로 사회규범을 지키고 사랑하기를 기대하려면 무엇보다도 행정 집행자들의 수범부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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