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에 살고 지고…] (5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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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 걸레로 이 세상 오예(汚穢)를
모조리 훔치겠다니 기가 차다

-구상

왔다 가는 세상에 산과 물 제멋대로 휘젖고, 허튼 소리 마구 내뱉고, 허튼 붓으로 한 세월 물감 칠하다 돌아간 이가 걸레 스님 중광(重光)이다. 내가 중광을 만난 것은 그가 세상에 알려지기 전인 1976년 무렵이었다.

어느날 스님 시인 석지현이 메줏덩이 같이 못생긴 사내와 예쁜 여승과 함께 나를 찾아왔다. 일식집에서 저녁 대접을 했는데 메주 같은 사내가 바랑에서 달마 그림을 꺼내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 그림이 내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괜히 끌려서 그가 묵고 있다는 감로암에 따라가 놀기도 했었다. 그도 '한국문학'에 자주 드나들며 붓장난한 것 같은 그림을 여러장 갖다주었다. 그러던 79년 중광이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미국 버클리대학 랭커스터교수가 중광의 그림을 묶어낸 '미친 중(The Mad Monk)'이었다. 어럽쇼! 하고 놀라고 있었는데 한 술 더 떠 '현대시학'79년 7월호에 중광 선화.선시 특집이 나오고 다음해는 미국 이곳 저곳의 부름을 받아 선화.선시의 특강을 하고 다닌다. 일약 세계 화단에 뛰어오른 것이다.

이제 중광 보기 어렵겠구나 했는데 81년 6월 3일 빨래골 공초 오상순 산소에 나타났다. 그동안 구상과 눈이 맞아 생전에 뵙지 않은 공초의 제자가 되겠다고 제사상을 차렸단다. 나이는 그가 위지만 공초사문(空超沙門)으로는 내가 먼저이니 아우를 얻은 기쁨일밖에.

하와이.뉴욕 등으로 전시회며 강연을 다니더니 85년에는 시와 산문을 묶어 '허튼 소리' 상.하권을 낸다. "한 땡초 중은 관가에 가서/이 놈을 잡아다가/개 패듯 마구 패어 주옵소서"이건 신군부가 저질렀던 불교 법난을 꼬집은 것이지만 거침 없는 상소리와 세태를 헐뜯는 소리에 책은 판매금지 당한다.

설악산 백담사는 만해가 스물여섯살에 머리를 깎은 도량, 서른 한살에 여기서 '불교신론'을 썼고 마흔여섯살에 '님의 침묵'을 지었다. 그래서 해마다 만해가 태어난 음력 7월 12일께면 백담사에서 '만해축전'이 열린다. 97년 여름 거길 갔다가 뜻밖에도 다시 중이 되어 들어앉은 중광을 만났다.

구상이 읊은 것처럼 지가 무슨 세상의 더러움을 다 훔치겠다고 떠돌다 몸도 머릿속도 기진맥진하여 백담사로 들어왔단다. 회주 무산(霧山)스님이 전법계(傳法戒)를 내려 법호를 농암(聾庵)으로 짓고 중으로 다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중광은 절집을 욕되게 하고 다닌다고 79년 조계종에서 파문을 당했었는데 스무해 가까이 밖으로 겉돌다 비로소 제집을 찾은 것이다.

"내가 마지막 돌아갈 고향이로다/일년에 한 번쯤 못 보면 몸살이 난다/내설악 백담사 앞 시냇물 흐르는/물소리 조롱조롱"('허튼소리'22) 그는 일찌감치 제 갈 곳을 정해놓고 지친 몸을 끌고 온 것이다. '공초문학상'기금을 위한 도록출판에도 큰 돈을 내놓았던 중광, 공초.구상.무산.중광으로 꿰어지는 염주에 나도 매달린 것인가.

지난해 3월 9일 중광은 허튼소리를 끝내고 67세로 입적했다. 여름 '만해축전'에 갔을 때 무산 스님은 그가 쓰던 넓은 중광산방을 통째로 내게 내줬다. 절집에서는 이것을 인연이라 하는지?

이근배 <재능대교수.한국시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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