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으로 이룬 역전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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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날의 제3국은 한마디로 치훈이가 바둑엔 지고 승부에 이겼다고 할수 있겠다. 초반부터 종반까지 흑이 좋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으며 이기려야 이길수 없는 바둑을 치훈이는 끈기와 정신력, 그리고「팬」들의 성원으로 끝내 역전승을 벌였다.
치훈이가 승리의 여신을 붙잡은 것은 최후의 최후에 가서였다. 초반부터 불리하던 것을 종반에 많이 만회하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도 5집반의 덤이 나오지않아 백이 절대 질수 없는 바둑이라고 관전기사들의 의견이 일치했었다.
이날 2층「홀」에서 해설을하던「오오다께」(대죽영웅)명인은「기다니」(목곡실)문하의 후배인 치훈이가 너무 일방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해설하기가 괴롭다면서 해설을 중단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했었다.
바둑이 끝나 계가를한다음 흑이 2집반을 이겼다고 하니까 모두들 흑백이 뒤바뀐게 아닌가해서 몇번씩 다짐해 물었고 그래도 도저히 믿을수없다는 표정들이었다.「오오다께」명인등 전문기사들도 대국장에 들어와『이런 바둑을 어떻게지느냐』고「후지사와」9단에게 물어보곤 했다.「후지사와」9단은 국후검토를 하면서『바보로구나, 바보로구나(바가다 네 바가다 네)』하는 요즘「히트」하는 일본의 유행가 가사를 몇번씩 혼자 외면서 어이가 없다는표정을 지었다.
반면을 살펴보면 초반에 흑은 좌상변과 바꾸어 쌓은 세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백36 이하로 알맹이를 먹혀 일순간에 불리해졌다.
국후검토에서는 흑35의 씌움이 제1감이지만 이수는 33에서 중앙으로 두칸(10·13)뛰어 크게포위했어야 했다고 지적됐다. 그러면 백이 36에 들어오기가 곤란하고 들어와도 그때는 귀를 주고 38쪽에 막아 좌중앙이 굉장히 커지기 때문이다.
흑45도 118에 붙여 끝까지 백을 몰았으면 대세를「리드」할수가 있었다. 그런것을 좌변백을 쉽게 살려줘서는 형세를 그르쳤었고 더구나 흑75, 77은 만약 흑이 졌다면 패착이 될뻔한 수였다. 치훈은 77다음에 백이손을 빼면 죽는 것으로 착각했던 모양인데 이수는 바로 117로 밑에서 몰았어야했다. 이후에도 흑에게는 전혀 기회가 없을듯이 보였으나 백158때 흑은석점을 주고 선수를뽑아 큰곳으로 달려가면서부터 미세한 바둑으로보였다.
그러나 2백수가 넘고부터 어떻게 된일인지 흑이 좋은것 같이 보였고 치훈은 마지막 1분을남겨 정확한 계가를 해보지는 않았지만 흑223때는 2집반 승리를 확신, 패를 걸지 않고 꽉막았다고 말했다.
결국 불리한 바둑을 이겨내긴 했지만 형인 나로서는 불만스러운 우승이었다. 다만 치훈이가 아직 미완성의 기사이기때문에 앞으로 계속 발전할수있는 소지를 이번의 끈기에서 발견할수있었다는점이 큰성과라고 하겠다.

<조7단과의 일문일답> "공부하는 자세로 대국"
▲이긴 소감부터….
조=도중에 여러 곳에서 불리한 바둑이었으나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기쁨을 누구에게 먼저 전하고 싶나?
조=기쁨을 누구에게 전하거나 누가 이기고 졌다는 문제를 떠나서 8강전결승3번승부로「후지사와」선생과 같은 분에게 많이 배운 것을 무엇보다도 기쁘게생각한다.
▲「후지사와」9단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지난번의「사까다」나「가또」한테는 꼭 이겨야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번에는 그런생각이 없었다.「후지사와」선생은 내가 없는 힘을 많이 가지고 있고 확실히 나보다 세기 때문에 이런기회에 공부를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바둑판앞에 앉으면 이겨야겠다는 생각이든다. 다만 만족스러운 바둑을 못둔것이 섭섭할 뿐이다.
▲금년에 특별한 계획은 없는가? 가령 명인을 목표로 한다든지….
조=큰「타이틀」을 따면 좋기는 하지만 명인을 목포로 한다거나 하는 생각에서 바둑을 둔다기보다 하나하나의 대국에서 열심히 두겠다.
▲집을떠난지 벌써 14년이 지났는데 아버지·어머니를 보고싶지 않은가?
조=지금까지도 부모님 보고싶은 마음을 참았으니 더 참으면 더큰 기쁨이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지내고 있다. 크게되어 돌아갈 것이니 그때까지 부모님 건강하시기만 바란다. (조7단은 우승직후 아버지와 국제전화를 하면서 반가와 눈물을 흘렸다.「조금만 더 기다리세요」,「진짜예요」,「곧가겠어요」,「내년에 가겠어요」,「몸조심하세요」등 짤막한말로 아버지와 통화했는데「내년에 가겠다」는 얘기는 갑작스럽게 아버지와 통화를 하게되자 반가운데다 한국말이 서툴러 나온얘기로「크게되어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에 돌아간다고 생각해본 적이있는가?
조=큰「타이틀」을 따고 크게된후에 결정할문제다.
▲사생활에 관해….
조=형님(조상연4단)이 항상곁에서 돌봐주어 근심걱정없이 지낼수 있고 방을 얻어 밥을 사먹고 지내지만 건강이 좋은 편이다. <동경=김경철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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