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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시장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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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종수
김종수 기자 중앙일보 부장
[일러스트=강일구]
김종수
논설위원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7시간에 걸친 규제혁파 토론회를 가짐으로써 박근혜 정부가 드디어 경제운용의 기본 틀을 갖추는 작업을 마무리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야심 찬 구상과 계획을 제대로 실천하는 일뿐인 듯싶다. 이대로만 간다면 박 대통령의 임기 내에 474 목표(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은 여반장(如反掌)일 것 같다. 그런데 한 가지 껄끄러운 고민이 있다. 경기가 좀체 살아나질 않는 것이다. 경제는 심리라고 했던가. 대통령을 필두로 온 정부가 경제를 살려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였건만 경기회복의 기운이 느껴지질 않는 게 답답한 노릇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경제를 살린다고는 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단기적인 경기부양책은 포함되지 않았다. 공공기관 개혁을 앞세운 비정상의 정상화나 창조경제를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 규제혁파를 통한 내수중심의 경제활성화 모두 구조적인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어서 어차피 시간이 걸려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경기 부진이 계속되면 이러한 장기적인 구조개혁 노력도 탄력을 잃을 공산이 크다. 당장 경제가 살아나는 효과가 보이질 않으면 자칫 개혁의 피로감만 누적될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생각만큼 오랫동안 기다려주지 않는다. 구조개혁과 함께 손에 잡히는 단기적인 경기회복의 실적이 필요한 이유다.

숫자로 나타나는 경기지표는 이미 회복세로 접어들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2분기 기업경기전망지수(BSI)는 111로 최근 3년 동안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BSI가 100을 넘으면 경기가 전 분기보다 좋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많다는 뜻인데, 기업들은 올 2분기의 경기상황을 상당히 낙관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체감경기는 여전히 ‘영 아니올시다’이니 어찌된 것인가. 경기변화에 가장 민감한 유통업체와 외식업체들은 올 들어 매출이 더 줄었다고 울상이다. 소비자들이 도무지 지갑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비자태도지수는 2011년 1분기 이후 내리 11분기째 기준치인 50선을 밑돌고 있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는 것이다.

 소비심리가 이처럼 위축된 데는 저성장 기조가 근본적인 배경을 이루고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값이 장기간 오르지 않거나 떨어진 것은 물론이고 거래조차 되질 않으니 돈이 돌지 않고 소비를 늘릴 기분이 나질 않는 것이다. 특히 1000조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의 절반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판에 부동산 시장의 장기침체는 가계의 소비의욕을 꺾어놓기에 충분하다. 집값 하락에 따른 자산 손실과 원리금 상환부담이 가계의 주머니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여기다 자산의 80% 이상을 부동산에 묻어둔 은퇴세대는 손해를 보고서라도 털고나올 기회조차 잃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가 이른바 하우스 푸어를 양산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부동산 거래가 실종되다 보니 부동산 중개업은 물론이고, 이사와 인테리어업 등 대표적인 서민업종마저 고사할 지경에 이르렀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방치하고서는 체감경기의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동안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살리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부터 수차례 부동산 시장 정상화방안을 내놓았고, 웬만한 부동산 관련 규제는 다 풀었다. 부동산 규제만큼은 이번에 나온 규제혁파방안 이전에 진작부터 풀어온 것이다. 그 덕에 연초부터 재개발 아파트를 중심으로 부동산 거래가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기도 했다. 가파른 전셋값 상승의 여파로 주택매입 수요가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전·월세대책으로 내놓은 ‘주택임대차시장 선진화방안’이 겨우 살아나는 부동산 시장의 불씨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주택 보유에서 거주로, 전세에서 월세로 바뀌는 주택시장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 오히려 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 월세 세입자를 지원하기 위해 세액공제를 해주려니 월세임대인의 임대소득이 드러나게 됐고, 월세 임대소득에 세금을 물리겠다고 한 것이다. 여기다 월세소득자와의 형평을 기한다며 전세소득자에 대해서도 과세하겠다고 했으니, 전세든 월세든 임대 매물이 쑥 들어간 것은 물론 임대업을 겨냥한 주택매입 수요마저 줄여버린 것이다.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물리는 것은 맞지만 지금까지 묵인해온 임대소득에 대해 새삼스럽게 세금을 내라는 것은 사실상 증세나 다름없다. 세금 무서운 줄 모르는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이제 주택시장은 근본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집값 상승을 노린 투자목적의 주택수요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그보다는 주거이전과 노후주택 대체를 위한 실수요와 임대목적의 투자수요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수요가 실제 거래로 이어지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주택거래에 따른 비용을 더 낮추고,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유예는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기업형 임대사업자를 육성하고, 임대목적의 다주택 보유를 지원하겠다는 정부대책은 바람직하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주택자산을 유동화할 수 있는 다양한 금융기법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소규모 임대사업자들을 위한 주택관리기업을 키우는 방안도 강구할 만하다.

김종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