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분양가를 공개하지 말아 달라니…

조인스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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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영기자] 며칠 전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취재원이었다.

"기사에서 분양가 부분만 빼줄 수 없겠습니까. 조합에서 기사를 보고 난리가 났습니다. 틀린 부분은 없지만 워낙 민감한 내용이라서요…."

분양가와 관련된 내용을 지우기 어렵다면 그 부분을 최대한 뭉뚱그려 달라는 요청도 곁들였다. 그는 서울의 한 재개발 지역에서 1000가구가 넘는 아파트 단지 분양 홍보를 맡고 있었다.

약간 당황스러웠다. 해당 단지의 분양가를 언급한 기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닐 뿐더러 취재를 통해 '~만원이 예상된다'는 일종의 추측성 언급이었는데도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서다. 실제로 예상 분양가는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 두세 군데만 전화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취재원의 설명은 이랬다. 조합과 건설사 간 분양가 협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 구체적인 금액이 기사로 노출되면 최종 분양가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였다.

예를 들어 조합이 3.3㎡당 1900만원의 분양가를 요구하고 건설사는 1700만원이 적합하다고 가정할 때, 기사에 '1700만~1800만원 전망'이란 내용이 실리면 가격을 낮추도록 압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분양가를 잘못 건드려 조합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어 홍역을 치른 기자도 있다"(한 건설사 관계자)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수요자 분양 받을 지 여부 결정 못해

사실 이런 전화를 받은 게 한두 번은 아니다. 대개 일반분양을 앞둔 아파트 분양가를 취재하다 겪곤 하는데, 조합원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재개발·재건축 단지 측이 특히 민감해 한다.

아파트 분양가에 대해 해당 시공사 측에 문의하면 대부분 "아직 협의 중"이라는 형식적인 답변이 돌아온다. 대략적인 가격 범위 정도만 말해달라고 해도 "곤란하다"며 손사래를 치기 일쑤다.

건설사나 홍보대행사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이해가 간다.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사업구조상 조합이 분양가를 되도록 높여 추가부담금(입주 때 추가로 내는 돈)을 줄여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조합원의 재산권이 걸린 문제인 만큼 건설사 등 입장에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새 아파트를 구입하려는 주택 수요자가 분양가에 관한 내용이 없어 아파트를 분양 받을지 여부를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분양단지 소개와 청약 일정을 담아 배포된 보도자료에 분양가 부분만 누락돼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알맹이를 쏙 빼놓은 채 '좋으니까 집 사라'라는 식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심한 경우엔 견본주택 문을 열 때까지 수요자들이 분양가를 알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입주자 모집공고가 나면 최종 분양가가 공개되지만 시점이 너무 늦다. 분양가가 가급적 빨리 공개돼야 수요자들이 시간을 갖고 청약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정보인 분양가를 모르고선 주택 구입에 대한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하다. 이번 사례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최소한 견본주택 개관 전에 대략적인 가격 범위를 알려주는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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