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올라도 너무 오른 교과서 가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새 학기가 3주나 지났으나 시중에서 중·고교 교과서를 구할 수 없다고 한다. 대형서점엔 교과서가 입고가 안 돼 있고, 온라인에선 재고가 없어 주문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전학이나 분실을 했다간 새 교과서를 구하지 못해 낭패를 볼 수 있다. 이런 어이없는 사태는 교육부와 교과서 출판사를 회원으로 둔 사단법인 한국검인정교과서협회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협회는 이미 교과서 발행 및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교육부가 “현재 학교에 배포된 교과서 가격을 출판사 희망 가격의 절반 이하로 받으라”고 권고하자 집단 반발한 것이다. 제조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교과서를 발행해봐야 손해라는 게 협회의 주장이다.

 교과서 가격 급등은 이명박 정부가 교과서 가격 사정제를 자율제로 바꾸면서 이미 예상됐었다. 2012년엔 고2와 고3 교과서가 가격 폭등 현상을 빚었고, 올해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고교 수학 검정교과서는 지난해 평균 정가가 3870원이었으나 올해 출판사의 희망가격은 8290원이어서 인상률이 114%나 된다. 그런데도 교과서의 질은 별로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오지 않는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원가 상승 요인이나 오랜 기간 정부의 가격 통제를 받아온 사정도 있을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마다 고삐 풀린 가격 인상은 학생이나 학부모가 인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번 사태의 빌미를 제공한 건 일관성 없는 교육부다. 교육부는 출판사들이 무턱대고 가격을 올릴 수 있게 허용한 뒤 뒤늦게 가격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통제하는 등 냉·온탕을 번갈아 오갔다. 이런 문제를 풀려면 현행 제도에 대한 보완책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출판사가 자율적으로 가격을 책정하게 하되 교과서 검정을 받는 단계에서 가격도 같이 제출하도록 유도해 교과서 내용과 함께 가격까지 검토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가격 폭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고 가격 상한제를 두거나, 학교가 교과서를 일괄 구입해 학생에게 빌려준 뒤 회수하는 교과서 대여제를 도입하는 것도 대안으로 검토해볼 만하다. 대책 없는 자율화의 폐해는 여기서 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