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컨설팅그룹이 들려주는 '경영의 한 수'] <끝> 대박 제품도 언젠간 단종 … 특허 만료 미리 대비해야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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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는 먼저 ‘인베가(Invega)’라는 이름의 제품을 출시해 재앙을 막아보기로 했다. 리스페달보다 복용량을 줄이고 가격도 낮췄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인베가는 리스페달과 복제약 어느 쪽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없는 어중간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복용 빈도를 줄이는 노력을 했으나 이 때문에 오히려 약효가 느렸다. 가격은 리스페달보다는 싸지만 복제약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없었다. 2006년 출시 후 특허가 보장됐던 6년간 인베가가 벌어들인 매출은 15억 달러 수준에 그쳤다.

쓴맛을 본 J&J는 ‘리스페달 콘스타(Risperdal Consta)’에서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항정신병 약물이란 점에서는 리스페달·인베가와 같지만 먹는 약이 아닌 주사제다. 매일 챙겨 먹어야 하는 기존 약품들과 달리 리스페달 콘스타는 2주에 한 번 주사를 맞는 방식으로 약을 투여한다. 특히 주사제는 복제도 어렵다. 스스로 약을 복용하기 어려운 중증 환자에게도 투여하는 건 물론 환자가 처방을 잘 따르고 있는지를 확인하기도 쉽다. J&J는 리스페달 콘스타의 적용 범위를 조울증으로까지 넓혔다.

J&J는 의약계를 대상으로 먹는 약보다 주사제가 항정신병 치료에 효율적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과거 핵심 제품인 먹는 약 리스페달의 수명을 스스로 끝내는 과정이나 다름없었지만 J&J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변화가 나타났다. 리스페달 복용자들이 점점 주사제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경쟁사들은 리스페달을 복제한 먹는 약을 쏟아냈지만 이미 시장은 주사제의 효용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리스페달 콘스타는 26억 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또 J&J는 올해 특허권이 만료되는 리스페달 콘스타 수명 후기 대비책도 세웠다. 2009년 인베가 ‘서스테나(Invega Sustenna)’라는 주사제를 출시하면서 투약 횟수를 4주에 한 번으로 줄였다. 주사기에 약을 미리 채워놓아 의료진이 다루기 간편하도록 편의성도 개선했다. 인베가 서스테나의 매출은 지난해 6억 달러를 기록했고, 2019년 특허 만료까지 총 55억 달러를 벌어들일 것으로 전망된다.

대박 상품이라면 업그레이드로 수명 연장
J&J처럼 핵심 제품의 수명을 스스로 단축하는 과감한 시도를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기존 제품의 영향력이 너무 커 더 나은 후속 제품을 만들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심폐소생을 하듯 생명을 연장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지난해 60억 달러어치가 판매되며 미국에서 둘째로 많이 팔린 전문의약품으로 조사된 위산 역류질환 치료제 ‘넥시움(Nexium)’은 ‘블록버스터’ 약물 ‘프리로섹(Prilosec)’의 수명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영국계 글로벌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AstraZeneca·이하 AZ)의 효자 상품이었던 프리로섹은 1993년 출시돼 3년 만인 1996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약’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AZ를 글로벌 선두 제약사로 올려놓았다. 2000년에는 글로벌 매출 62억 달러를 기록하며 회사 총매출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제품의 수명은 2001년으로 정해져 있었다. 특허권 만료 시점이 2001년 4월이었기 때문이다. 특허권 만료와 동시에 더 싸고 효능은 동일한 복제약이 쏟아져나올 것이 분명했다. AZ는 수익성 방어 대책을 미리 세워야 한다고 판단했다. AZ는 프리로섹의 특허권 만료 6년 전인 1995년 ‘상어 지느러미 프로젝트(Shark Fin Project)’라 이름 붙인 특별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진은 물론 마케팅, 법률전문가 등 사내 각 분야 전문가들을 참여 시켜 프리로섹 수명 후기 대응책 50가지를 만들었다. 차세대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과 같은 대규모 시나리오도 있었고, 특허권 연장 소송 등 법률 대응책도 있었다.

프로젝트 팀 눈에 띈 것은 부작용 가능성은 줄이고 약효는 높인 프리로섹 업그레이드 버전을 출시하는 방안이었다. 연구진은 프리로섹의 성분 중 일부를 분리해냄으로써 부작용 가능성을 대폭 낮추는 데 성공했다. 또 위산 역류 환자 중 절반 이상이 앓고 있는 식도염 치료 효과도 더했다. 이 약의 이름을 ‘넥시움’으로 정했다. 이름은 전혀 다르지만 프리로섹과 연결성을 강하게 심어주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다. 프리로섹의 상징인 보라색 알약과 패키지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왔고 대신 캡슐에 줄무늬를 추가해 리뉴얼이라는 인상을 심었다.

AZ는 2001년 2월 넥시움에 대한 특허권을 따냈고, 3월부터 본격 판매에 돌입했다. 경쟁이 매우 치열한 분야임을 고려해 과감한 마케팅과 영업을 시행했다. 영업사원 규모를 기존 대비 네배 수준으로 늘려 의사를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넥시움을 알리면서 동시에 직접 소비자 대상으로 추가 효능을 알려 수요를 끌어내는 마케팅 정책도 전개했다.

생애 마지막까지 관심 놓지 말고 관리해야
특허권이라는 강력한 장벽이 존재하는 제약 시장 특성상 특허 연장 소송 등으로 제한적이고 일시적으로 수명을 늘리는 방법에 의존하지 않은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기능을 개선한 새 제품을 만들어 특허권을 새로 따내면서 여기에 기존 제품의 이미지를 입히는 시도가 좋았다.

신약 개발은 천문학적 비용이 투입되고 성공 확률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제약회사들은 특허권 만료 이후에도 자사 제품의 가치를 유지해 최대한의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제품 생애 후기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전자기기·자동차·생활용품 등 대부분 소비재 업종의 신제품 출시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동시에 기존 제품의 수명도 점점 단축되고 있다. 시장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화된다.

리스페달의 특허 만료가 5년이나 지난 2012년 J&J는 항정신병약 매출을 리스페달 오리지널 약의 연 최고 매출(peak sales) 대비 50%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특허 만료 후 1년 만에 매출의 50~60%가 급감하며, 심지어 6개월 만에 95%의 매출이 사라지기도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을 고려할 때 J&J의 제품 생애 후기 관리 효과가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한 제품의 성공이 그 기업의 영원한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이 제품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수익을 끌어내려면 생애 후기까지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많은 기업이 신제품 출시에만 역량을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혁신적 신제품 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이 역시 수명이 다하는 순간이 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김율리 보스턴컨설팅그룹(BCG) 파트너
온라인 중앙일보·중앙 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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