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폭침은 ‘3·26 사변’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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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30면

얼마 전 일이다. 육군 모 보병사단이 이전해 간 곳의 이웃 주민들이 방음벽 위로 확성기를 틀어놓아 병사들이 잠을 못 잔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보도를 보고 있던 아내는 혀를 차며 말했다. “군대도 안 가봤나. 군대도 안 보내봤나?” 아들 녀석이 입대할 때 따라갔다가 훈련소 입소식 내내 울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두 시간 동안 눈물을 훔치던 엄마의 반응은 그게 정상일 테다.

나는 명색이 법률가라서 법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수면을 방해할 정도면 그 확성기 그냥 철거해도 될 텐데 왜 그대로 놔두지? 군부대가 들어온다고 반대하고, 아파트를 군인 관사로 매각했다고 반대하고, 해군기지를 만든다고 반대하는 그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야?” 이럴 때 아내는 늘 나를 나무란다. “그래도 소통하며 해결해야지. 그런 발상은 너무 과격해.”

나의 어머니는 아들 셋을 육·해·공군에 한 명씩 보냈고, 아내는 아들 하나를 육군에 보내봤으니, 그런 시위에는 분명히 반대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입대하고 나서 사제 옷을 넣어 보낸 소포를 받아 들고 한참을 우셨다고 한다. 내가 당신의 손자 군대에 면회 간다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면 “면회 끝나고 돌아올 때 마음 아파 아예 안 가는 게 좋을 게다”라고 조언하신다. 반려견을 키우면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데 그 이별이 너무 힘들 것 같아 반려견을 키우지 않겠다는 아내의 논리와 비슷하다. 사실 나도 아들 면회를 가서 한겨울에 장갑차를 닦고 조이느라 열 손가락 손톱 밑에 새까맣게 기름때가 끼어 있는 걸 보면서 애처로운 마음에 하늘만 쳐다보아야 했다. “야, 이제 여섯 달밖에 안 남았네”라고 격려하면 “아빠, 아직 여섯 달이나 남았어요”라고 응수하는 것이 군대생활이다.

아들이 군대에 가 있을 때인 2010년 3월 26일 초계함(PCC) 천안함 폭침이 있었다. 6·25사변(전쟁) 60주년을 불과 3개월 앞둔 때의 날벼락이었다. 그날 아들은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전화를 해왔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가. 아내는 천안함에서 전사한 아들을 둔 엄마를 주인공 화자로 하여 단편소설을 발표했다(소설 ‘꽃을 던지다’(작가세계) 2010년 가을). “내가 마지막까지 빨리 배에서 나오라고 소리쳤는데 내 목소리를 들었을까.” 아들을 잃은 소설 속 화자는 울부짖으며 소리친다. 감정이입이란 이런 것이다.

그때 전사한 46명의 용사를 보면서 그들이 대부분 어려운 집안에서 나서 자란 부사관과 사병이어서 더 눈물이 쏟아졌다. 전투함을 타는 힘든 일을 선택한 부사관은 특히 그렇다. 서민의 자식들이다. 부사관의 박봉으로 온 가족을 먹여 살리는, 착하고 성실한, 자랑스럽고 귀한 아들이자 남편이다. 그래서 그들이 더 가엾다. 시인 두보는 ‘눈물을 닦으니 옷깃에 피눈물이 젖는다’고 하였던가.

선전포고도 없이 상대방에게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을 ‘사변’(事變)이라고 한다. 천안함 폭침이야말로 단순한 ‘천안함 피격 사건’(국방부 공식 명칭)이 아니라 분명히 사변이다. 그러니 이제는 ‘3·26사변’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렇게 불러주어야 2010년 3월 26일을 우리가 기억할 수 있다. 6·25사변이 발발한 날짜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 이름 때문이다.

어느 시기부터 6·25사변이라는 말 대신에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6·25사변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사전적인 의미에서나 전쟁 발발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6·25사변이라는 용어가 보다 적확(的確)하다고 생각한다.

천안함 폭침을 3·26사변이라고 명명하면 후대들도 기억하기 좋을 것이다. 그때 억울하게 전사한 46인의 용사를, 살아 있는 우리가 앞으로 계속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변을 당하고도 아무런 군사적 상응 조치도 취하지 못한 우리들이 진실로 반성하는 날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이제 3·26은 우리 내부적으로 시스템을 정비하고 장비를 보완하는 등 징비(懲毖)의 지혜를 짜내기 위해 각오를 다지는 날이 되어야 한다.

다시는 그와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대비태세를 굳건히 갖추는 일이야말로 평화와 통일과 번영의 기본조건이다. 5·24 조치만 기억하고 3·26사변을 잊어서야 되겠는가.



황정근 서울대 법학과 졸업.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을 지냈다. 사단법인 ‘새조위’(새롭고 하나 된 조국을 위한 모임) 공동대표. 저서 『선거부정방지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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