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일은 지방에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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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7호 30면

졸지에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사실상 합병되었다. 국제법도 힘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 것이 국제사회라는 냉엄한 교훈을 주고 있다. 중앙정부는 국토를 보존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 임무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는 대외적으로 국방을 튼튼히 하고, 물샐 틈 없는 외교를 통해 국가를 지키고 국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대내적으로는 시장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기업들이 마음껏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어떤가. 오죽하면 대통령이 규제개혁을 위해 끝장토론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까지 왔는가. 대통령이 대북 원칙의 확립, 규제개혁, 공기업 개혁, 공무원연금 개혁과 같은 저항 많고 어려운 과제를 쉴 틈 없이 주문하고 있는데 중앙정부는 굼뜨기 그지없다.

이제 중앙정부도 자진해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덜어내되, 시대를 선도하는 새로운 국가적 과제를 발굴해 유능한 공무원들이 신명나게 창의력을 발휘하게 할 수는 없을까. 제발 중앙부처는 기존 규제는 그냥 두고 새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기구·조직·인력을 늘리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국가가 관리하는 국가부채와 공기업 운영 실태를 보면, 중앙정부가 비용 개념을 제대로 지니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각종 예산낭비 사업, 중복 사업이 여전하고 공기업의 부패, 전관예우가 만연하고 있다. 그러니 정부 경쟁력이 낮을 수밖에 없다. 국민경제에 파급효과가 큰 공기업들은 공익을 이유로 비효율을 정당화할 것이 아니라 경영능력이 검증된 기관장 및 임원들에게 맡겨 과거의 방만경영을 개선함으로써 국민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

아예 중앙정부가 손을 떼는 게 나은 분야도 있다. 부동산 정책이 그렇다. 정부가 전세와 월세 임대자에게도 임대소득세를 부과하겠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부동산 거래가 다시 뚝 끊기고 말았다. 6년 동안 얼어붙었던 부동산시장을 겨우 살려내 최소한 하우스푸어에게 퇴로를 열어주는가 했는데, 중앙정부가 시장을 다시 망치는 일을 하고 말았다.

임대시장 정상화는 부동산 시장이 어느 정도 안정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부동산 거래부터 살리는 것이 급선무다. 그런 우선순위와 완급을 조절하지 못한 채 중앙정부는 허둥지둥 탁상행정을 하고 있다. 지난 수십 년의 경험에 따르면, 중앙정부는 모든 지역의 부동산 시장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정책을 만들 수 없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이번처럼 징세관료의 관점에서 정책을 추진하면 시장이 용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주택정책을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의 권한과 책임 하에 두고 있다.

이처럼 중앙정부의 정책 실패가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권한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획재정부는 재정지출과 관련된 모든 정책 즉 국가재정, 경제정책, 대외경제, 심지어 지방재정까지 문어발식으로 관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교육부, 경찰청 등 다른 부처도 마찬가지다. 지방정부가 개별 지역의 실정에 맞추어 더 잘할 수 있는 일도 중앙정부가 행정으로 규제하고, 재원으로 통제하고 있다. 창의성도, 현실성도 높이기 어려운 구조다.

이제라도 중앙정부는 지역적 집행 업무를 과감하게 지방정부에 이양해 스스로 업무 과부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국가적 정책과제, 즉 거시 경제, 금융, 외교안보를 비롯해 전국적인 통일성을 요하는 분야에 핵심 역량을 집중할 수 있다. 그것이 정부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동시에 지방정부(지방자치단체) 역시 중앙정부의 산하 기관이나 하부 집행기관이 아니라 헌법상 보장된 주민의 대표기관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지녀야 한다. 세금을 내는 국민이 진정 바라는 것은 중앙정부다운 일을 하는 중앙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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