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곡 수매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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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는 올해 추곡수매가격을 작년보다 23·7% 올린 80kg들이 가마당 1만9천5백원으로 결정했다.
한마디로 이 같은 인상률은 적어도 생산자들에게는 크게 미흡한 수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생산자가 납득하기 어려운 수매가라면 결국 합리적인 결정으로 간주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새삼스레 양정의 기본을 운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농민들에게 있어 양곡의 증산유인의 핵심은 가격정책에서 찾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 있어서도 최근 수년 래의 괄목할만한 생산증가는 그나마의 고수매가 덕분이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겨우 본궤도에 오르려는 주곡생산체계를 다시 수정할 생각이 아닌 이상 적어도 수매가격만은 계속 생산비와 적정이윤을 보장해 주는 선에서 높게 책정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한해의 물가상승률이나 생산비 또는 농가교역조건의 변화 등 어느 기준으로 보아서도 23·7%를 적정한 인상선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번 수매가는 적어도 두가지 우려할만한 판단을 근거로 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그 하나는 정부 일각에서 그 동안의 농정의 성과를 과대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과연 물량 면에서 3천만섬을 넘어선 지난해 이래의 주곡증산 성과는 근래에 겪어보지 못했던 경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식량자급이라는 흔들릴 수 없는 정책목표가 이제 수정되어도 좋을 만큼 충분한 성장인가 또는 그것이 설사 충분하다 해도 하나의 추세로 정착될 전망이 확실한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단정을 내릴 수 없는 단계다.
작년 이래 간단 없이 제기되고 있는 곡가정책의 재검토론도 가격지지의 방법론에 대한 재검토이기를 생산자들은 바라왔다. 만일 그것이 재정부담의 한계를 내세운 고미가정책의 후퇴론이라면 미작경영의 보수성을 너무도 경시한 일관성 없는 농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하나는 농정의 본원인 곡가정책이 점차 농정의 손을 떠나 일반 물가정책의 하나로 전이되고 있는 점이다. 농정이라고 부처간의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결정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최근 수년간의 수매가 결정과정에서 보면 농정주무부처의 의견이 지나치게 무시되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이런 현상이 양특적자로 대변되는 통화·물가 당국의 고충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만의 하나라도 이런 현상이 농정의 핵심을 간과함으로써 본말의 전도를 너무 쉽게 생각하도록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재정부담능력이 한계에 이르고 있음은 주지된 바와 같다. 특히 수매량을 크게 늘리려는 올해는 그 부담이 더욱 방대해질 것이다.
재정적자 확대에 따른 물가에의 파급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통일벼의 시세격차도 낮은 수매가의 명분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같은 명분이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어느 하나도 주곡의 안정적 자급이라는 확고한 과제를 양보시킬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인 것은 될 수 없다.
결국 당면한 양특적자 해소는 소비자 가격의 일부 현실화와 재정의 자체충당으로 단계적인 해결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경우 생계비와 관련한 영세민 부담증가가 문제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혼합곡 비율을 더욱 낮추고 가격을 내려 구호곡으로의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는 지금도 인기가 없는 정부미의 수요를 자극하는 효과도 노릴 수 있을 것이다.
모처럼의 대풍과 함께 부푼 증산의욕을 낮은 수매가와 그나마의 외상수매로 식혀버리는 결과를 초래할까봐 적이 걱정된다.
특히 현금수요가 상대적으로 많은 영세민들에게는 외상수매가 저수매가 못지않게 큰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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