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생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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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역사에는 사소한 일로 일어난 대사건이 많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렇지가 않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치만 낮았더라도 세계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 「파스칼」도 사실은 사소한 원인 뒤에는 실상 엄청나게 큰 요인이 숨겨있다는 얘기를 하려했었다.
가령 「나폴레옹」은 마지막 결전 때, 공교롭게도 심한 배앓이를 했었다. 그래서 만약에 복통만 없었다면…하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때 그의 복통이 아니었더라도 「나폴레옹」의 패배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필연이라고 사가들은 보고 있다. 그렇지만 보통사람들은 혹은 또? 하는 생각을 흔히 갖게 된다.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를 만나지만 않았더라도 「로마」의 역사는 달라졌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가 아니었다해도 「안토니우스」에게는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중히 여기는 성격이 있었던 것도 틀림없다.
그렇다면 「안토니우스」는 「옥타비아누스」에게 질 필연성을 갖고 있었다. 「파스칼」은 틀린 것이다.
지금부터 꼭 46년 전의 오늘 광주에서 「약소민족의 해방」을 외치며 학생들이 들고일어났었다. 그 발단은 매우 어이없는 일이었다.
10월26일 한 통학열차 속에서 일인학생이 광주고보생에게 『야만이다』라고 욕했다. 이에 분개한 고보생이 일인학생에게 사과하라면서 덤벼들어 주먹다짐을 했었다.
어느 책이나 이렇게 숙술하고 있다. 만약에 그 고보생이 주먹에 자신이 없는 학생이었다면? 만약에 열차 안에 한인학생의 수가 일인학생보다 훨씬 적었다면? 만약에 매를 맞은 일인학생의 아버지가 경부보가 아니었다면? 우연(?)은 묘하게 겹쳐졌다. 나흘 후에 같은 통학열차 속에서 일본인학생 서너명이 한국여학생들을 희롱했다. 그녀들의 댕기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만약에 이 때에도 우리네 학생들의 힘이 모자랐으면? 만약에 이 때에 일인순사가 일방적으로 한국인 학생을 때리지만 않았다면? 만약에 또 이 때에 광주고보의 일인 선생들이 조금이라도 자기학생들 편을 들어줬더라면? 이렇게 사소한 원인들과 우연들이 겹친 끝에 드디어 저 유명한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교과서의 객관적인 숙술만 보면 이렇게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만약에」가 모두 그대로 일어났다해도 학생운동은 일어났을게 틀림없다.
그만한 필연성을 충분히 갖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운동으로 발전하여 그 이듬해 3월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퍼지는데는 충분히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그날은 우리에게 값진 신화를 안겨주였다. 그것은 조금도 우연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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