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주치의] 디지털 기기 잘 활용하면 치매 예방에 도움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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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석 교수

라마르크(Lamarck, J.)의 ‘용불용설(用不用說)’은 신체 기관은 사용할수록 발달하고 안 쓰면 퇴화한다는 유명한 이론이다. 자손에게도 유전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뇌에도 용불용설 이론이 적용될까. 내가 의과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신경세포의 특성상 성장이 끝나는 20대 이후에는 더 이상 뇌 발달이 없다는 것이 뇌과학의 정설이었다. 그런데 뇌과학에 대한 최신 연구들은 이 주장이 완전히 틀렸다는 논리적 근거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헬스클럽에서 반복 훈련으로 식스팩이나 알통 같은 근육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 뇌도 훈련을 통해 기억력천재·언어천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없을 때는 전화번호 몇십 개쯤은 쉽게 외우고 다녔는데, 요즘은 내 전화번호도 헷갈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대화나 생각을 했을 것이다.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점점 뇌를 쓸 일이 없어지면서 ‘치매를 앓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내용이다. 실제 아주 찾기 어려운 초행길이 아니라면 내비게이션을 끄고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직접 찾아보고 익히는 것은 공간지각 능력을 키우는 좋은 습관이다. 그렇다고 치매 예방을 위해 스마트폰이나 내비게이션 같은 편리한 디지털 기기를 내다 버릴 필요는 없다. 나는 스마트폰 사용이 치매를 부추기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적극적인 디지털 기기 활용이 치매를 예방하는 좋은 습관일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 나이에 뭘’ 하면서 배움의 기회를 일찌감치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이러한 소극적 행동이야말로 오히려 치매를 부르는 나쁜 태도다. 이미 익숙하고 편안한 곳에만 안주하지 말고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것이 치매를 예방하는 최고의 방법임을 명심하자. 구형 휴대전화로 통화하거나 문자만 보낼 줄 알았던 사람에게 스마트폰은 검색·SNS를 통한 소통과 같은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는 요술 지팡이다. 낯설고 두렵더라도 시간 날 때마다 꺼내 이것저것 눌러보자. 스마트폰은 의외로 단단해 당신의 연약한 손가락 힘만으로 고장날 일이 거의 없다.

자녀에게 새로운 기능에 대해 묻고 또 물어라. “밥은 먹고 다니냐” 같은 상투적인 안부보다 100배 흥미로운 대화의 장이 마련될 것이다. 몇 개의 전화번호 외우기를 포기하고, 대신 교육용 앱을 활용해 새로운 언어에 도전해 보자. “저 나이에 새로운 언어를 배워 무엇에 쓸까” 하는 답답한 질문은 얼른 던져버리는 것이 좋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 없는 건강한 노년기를 원한다면 당장 휴대전화부터 바꾸는 게 좋다. 오히려 새로움에 대한 호기심 상실이야말로 치매를 일으키는 최대의 적임을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자발적인 얼리어답터(Early Adopter)가 되길 조언한다.

정유석 단국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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