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동북아의 세력균형과 한반도의 평화(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반도 평화정착은 1차적으로는 분단현상을 부전상태유지로 등식화하는 데서부터 모색되어야 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휴전선을 안전장치로 만드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적 우위와 균형의 확보라는 과제가 우선적으로 제기된다.
만일 남북한이 똑같은 전략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이 문제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북괴는 우리의 전략개념과 전연 다른 전략을 들고 나오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이중의 도전을 안겨주는 것이다.
한국이 채택해온 전략개념은 미국식 전략개념, 즉 고도의 군사력을 중심으로 하는 힘의 논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략개념이 막대한 물량을 필요로 하는 것임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까지 이 물량의 상당부분은 미국이 대주었다.
앞으로 그 「상당부분」의 「상당부분」을 또 우리가 자주적으로 담당할 경우 또 하나의 문제점이 제기될 것이다.
북괴는 GNP의 14%를 군사비로 투입하고 있다. 그러한 막대한 부담은 주민소비생활의 극심한 핍박을 묵살할 수 있는 강압적·폐쇄적 사회경제여건으로 지탱되고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소비구조, 그리고 대외개방적인 사회질서를 가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자주국방의 극대화를 위해 소비지향적 생활양식을 전적으로 묵살하기는 어려운 입장이다.
여기에 우리가 안고 있는 이중의 곤란이 발견된다.
「한국의 안전」과 「한반도의 안정」을 확보하려는 우리의 궁극적인 평화전략은 불가피하게 그것을 설명해주는 명분으로서의 어떤 이념과 교우하게 된다. 그와 관련, 이른바 민족주의라는 상위개념에 대한 건전한 인식태도가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건전한 민족주의란 공산주의자들의 악용을 배제할 수 있으면서 아울러 19세기적인 일국주의나 사회「다위니즘」적 체질에서 탈피된 것이라야 한다.
사회「다위니즘」적 민족주의가 파생시키는 무제한한 물량적 팽창주의는 오늘의 자원부족시대에서는 현대성을 가질 수가 없다.
그리고 민족주의든, 근대화든, 그 어떤 명분을 밀고 나가든 그것을 추진하는 사회계층을 시급히 형성해야할 과제도 아울러 지적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중산층의 형성이란 과제로 연결된다.
농촌에 있어서의 새마을운동은 그러한 차원에서도 조명될 수 있다.
그러나 도시지역과 그 주변의 문제에 더욱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백 내지 5백「달러」정도에 이를 때 사회문제가 가장 많이 제기된다고 한다. 이쯤 되면 생존수준은 넘어섰기 때문에 쾌적한 생활에의 욕구가 강해지기 마련이다. 더욱 일부의 사회적 낭비와 사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른바 상승기대의 좌절이라는 갈등을 가져오기 쉽다.
그러니 높은 소비수준의 생활「패턴」을 그대로 놓아두고 어떤 명분을 추구하기도 어려우며, 그렇다고 소비수준을 낮추자면 지금까지의 발전「모델」과 어긋날 수도 있는 「딜레머」에 직면한다.
때문에 한국적인 내용의 올바른 민족주의과제를 해결하려는 우리의 평화·안보전략은 그와 같은 「딜레머」를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고도의 「비전」과 기술을 요한다 하겠다.
결론적으로, 안보전략의 기본과제는 현상유지적 평화정착이란 제1단계 목표를 국토통일이라는 장기적 목표달성을 위한 견실한 기반으로 만들려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군사적 우위와 균형을 계속 확보하면서 대내외적인 정통성과 명분을 선취, 동북아의 균형구조 속에서 북괴의 망상을 좌절시키는 필을 모색해봄직하다,
이러한 전략은 외교기술의 문제인 동시에 우리 공동체의 내적 완성과 결부되는 정치적 과제이기도 하다.
여기에 「국가안보」의 총체적인 의미가 발견된다. 지금 우리 공동체 내부에는 내실과 효율을 다지기 위한 전반적인 노력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노력은 어느 나라나 역사적으로 반드시 한번은 거치게 마련인 민족주체성의 확립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체제화·활력화하느냐 하는 질문에 응답하려는 것이다.
이 응답의 충족도에 병행해서 현상안정이라는 1차적 국가목표는 접근되어갈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지향하는 우리의 평화전략은 결국 우리가 살고있는 공동체의 내적 완성과 표리를 이루고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한다.
세미나 참가자
노재봉 교수(서울대)
오기평 교수(서강대)
이상우 교수(경희대)
장두성(본사외신부장)
유근일(사회·본사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