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부조리의 본과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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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은행 감사 결과에 따라서 중견 은행원 3백여명이 해직위기에 있다는 보도는 금융계에 충격을 주고도 남을 듯 하다.
금융 부조리를 시정하겠다는 당국의 결의가 강력한 이상, 일부 은행원이 희생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지 모르겠으나 아직 구체적인 방침이 밝혀지지 않은 작금의 단계에서 성급한 판단은 삼가코자 한다. 그러나 금융 부조리의 본질이 무엇이며 시간외 수당이나 소모성 경비 지급의 부조리가 금융 부조리에서 점하는 비중은 얼마나 되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서 본말이 뒤바뀌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어차피 많은 인원을 투입하여 금융부조리의 시정에 장시간을 투자한 이상, 그 결과가 나와야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금융부조리의 시정이 금융 기관의 경영 합리화와 직결될 수 있도록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본질적인 시정 방향이라고 하기 어렵다.
이번 감사결과는 반드시 은행 경영합리화와 직결되도록 주도해 주어야 하겠으며, 이 점 재무당국의 깊은 배려가 있기를 기대한다.
우선 은행원의 시간외 수당지급을 줄이는 일이 은행 경영개선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지부터 냉철하게 평가하고 넘어가야 한다. 엄격히 말하여 은행원의 시간외 수당은 봉급 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재무당국이 편법으로 인정한 봉급의 일부였었지, 근로기준법상의 시간외 수당은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은행원의 처지에서 보면 통상봉급의 삭감인 것이며, 지금과 같은「인플레」기에 봉급을 몇십%씩 삭감하면서 업적을 올리라고 하는 것은 비록 은행원의 정신자세를 나무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경영 개선 수법이 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음으로 사실상 정부가 임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임원들은 책임상 행원들을 독려하는 위치에 있지만, 봉급 삭감을 막아 주지 못한 임원과 행원사이에는 심각한 심리적 갈등이 내재되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의사의 단절 속에서 은행경영을 개선하라는 것은 어쩌면 경영 수법상으로는 찾기 어려운 방법을 찾으라는 요구가 될 것이다.
또 소모성 경비의 부당 지출이 취급자의 주머니에 들어간 것이냐 아니냐를 은행장들을 불러 확인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만일 그들 취급자들이 사복을 채우기 위해서 영수증을 조작한 것이 아니라면,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안됐던 사회적 여건부터 시정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단적인 예로 예금주는 금리 수준에 따라서 움직이기 마련인데, 단자 회사 금리와 은행예금 금리는 크게 차이가 나고, 그 때문에 유형무형의 「서비스」를 제공치 않고서는 은행원에 할당된 예금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상황이 문제인 것이다. 이 경우 금리정책에 보다 큰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닌가.
같은 논리로 현행 도로 교통법이나 소방법을 엄격히 지키는 한, 은행문 앞에 예금주가 차를 세우기란 어려울 것이며 또 은행건물은 대대적인 보수 투자가 불가피 하다. 이러한 문제들을 시정하지 않는 한, 영수증은 부당처리 되었을지 몰라도 지급된 돈이 은행원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금융계 부조리의 핵심이 이렇게 쇄말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여신 부문에 있음은 누구의 눈에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 사실이라는 점이다. 금융 부조리를 시정한다는 이번 감사에서 왜 이 부문의 부조리를「터치」하지 않았는가, 부실 여신이 누적되고 있지는 않은가, 부실 여신인줄 알면서 계속 지원하는 일은 없는가, 은행이 원해서 부실 여신이 일소되지 않고 있는가, 그리고 부실 기업 정리는 과연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는가 등등을 파헤쳐 볼 여지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은행 경영이 여신의 건전화 없이는 결코 합리화 될 수 없는 것이며 금융부조리의 시정은 마땅히 중점이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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