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과 興의 융합민국

중앙일보

입력

한국인의 정서를 한 글자로 정리하면 한(恨)이라고들 한다. 나는 그러나 대체 ‘한’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어떤 선생님께서 한자 ‘恨’을 보면 이해가 잘될 거라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다. 하지만 난 이 글자를 보고 어리둥절했다. 중국어에서 ‘恨’이라는 글자는 ‘증오’ 혹은 ‘원한’이라는 부정적 의미로만 쓰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이미지는 친절하고 선량한데, 마음속엔 증오와 원한이 쌓여 있다는 이야기인지 궁금했다.

언젠가 한국인 친구와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농담으로 ‘중국 학생들이 가장 머리가 아픈 과목은 역사다. 서로 치고받고 싸우는 통에 300년이 넘은 왕조도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에 비해 한국 학생들은 참 좋겠다. 조선·고려가 모두 500년 이상 지속됐고 신라시대는 무려 1000년이나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한국인 친구는 “난 역사를 좋아하지만 우리 역사를 배우며 안타까움만 느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수천 년을 살아온 게 한민족”이라고 답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한국 역사에 호기심이 생겼다. 사실 중국의 역사교과서는 미국·유럽·일본에 대해선 많은 분량을 할애하지만 한국 역사에 대해선 한두 줄밖에 나오지 않는다. 쇠뿔도 단김에 뺀다는 마음으로 그날 밤새 한국 역사책 한 권을 읽었다. 중국 사람들이 싫어하는 역사가 외침을 받은 송·청 말기인데 한국의 역사를 보면 외침을 받은 고난의 역사가 무척 길었다.

그러다 ‘아리랑’이라는 민요도 접하게 됐다. 첫 소절부터 슬픈 선율이 온 방 안에 퍼졌다. 내 마음도 뭉클해지고 슬퍼졌다. ‘아리랑’이 ‘한’이라는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다고 하는데, 노래를 들으니 이해가 되는 듯했다. 그러고는 두 번째 궁금증이 생겼다. 한국인의 ‘한’이라는 감정은 증오가 아닌 슬픔에 가까운 감정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판소리를 찾아 듣기 시작했다. 마당극도 여러 편 찾아봤다. 춘향의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한국인의 ‘한’에 조금은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중국의 전통 민속문화는 웅장함으로 대표된다. 영웅 서사시처럼 호방한 내용이 주다. 반면 한국의 전통 민속문화는 소박하면서도 서민적이다. 계속되는 외우내환(外憂內患) 속에 안타까움과 억울함, 슬픔과 원망이 켜켜이 쌓인 듯하다. 원망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마음을 억누른 채 살아가야 하는 응어리진 마음으로 수천 년을 살아온 민족이 한민족이다.

여기에서 “하지만 우리는 이런 고통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강한 끈기로 버텨 왔다”는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한’이라는 정서 때문에 한국인들이 서양문명을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고 전 세계가 놀랄 만한 한강의 기적을 이뤄 낸 것은 아닐까.

새천년의 한국은 달라졌다. 현대 한국인들에겐 ‘한’이라는 정서보다는 쌓이고 쌓인 응어리들을 한순간에 폭발시키는 에너지인 ‘흥(興)’이라는 정서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의 방송에서도 이젠 ‘7080 콘서트’처럼 흘러간 옛 노래보다는 ‘뮤직뱅크’처럼 역동적인 춤과 노래가 세계의 이목을 더 끌고 있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현대 한국인의 ‘흥’이라는 정서는 곧 동시대 현대인의 자아를 대변해 주는 것 같다.

한국인의 문화와 그 기저에 깔린 심리뿐 아니라 행동방식에서도 ‘한’과 ‘흥’의 공존을 찾을 수 있다. 외국인의 눈엔 한국인 속엔 이 두 가지 상반된 성향이 공존한다. 충동적이고 다혈질로 대표되는 한국인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 안에선 강한 인내심을 보이며 상부에 복종한다. 일을 할 때는 엄숙하고 진지하지만 술자리에선 음주가무를 즐기며 흐트러진 모습까지도 용납된다.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한국인들의 모습 속에서 난 한국인들의 힘을 본다.



천리 1979년 중국 선양(審陽)에서 태어나 선양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숙명여대 박사과정 수료. 한국에 온 뒤 주로 비즈니스 중국어를 가르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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