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곧 어린이 교재-만화 윤리「세미나」…조연현씨 발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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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만화가 어린이들의 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크며 최근엔 어른을 상대로한 성인 만화가 제작돼 그 퇴폐와 비윤리성이 문제되기도 한다. 5일 한국도서잡지윤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제1회 만화윤리「세미나」에는 만화가·편집자·발행인 1백50여명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점에서 적잖은 관심을 모았다. 만화가들은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층으로 토론에 적극 참가해 만화심위에 만화가가 없다든가 고료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주제 발표자는 김은우(이대교수)·조덕송(언론인)·조연현제씨. 다음은 주제 강연 중 조연현씨(예륜 위원장)의 『만화 소재 선택의 문젯점과 만화 제작자의 책임』의 요지다.
본래 만화는 그 단어가 뜻하듯이 회화적인 요소를 갖는 것이다. 그 때서 성인만화의 경우는 풍자적인 사회 비판을 할 수 있고 아동 만화는 모험적 「유머」를 길러주는게 된다. 그러나 요즈음의 만화는 희화적이고 「유머러스」한 점이 없어져 버렸다. 단순한 극화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사고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고 상상력이 왕성한 어린이들에게 만화는 특별히 큰 영향을 미친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모험에의 유혹을 불러일으키며 독서를 하도록 유도해주고 정서를 자극하고 이야기에의 흥미를 북돋우며 권선징악의 의지를 길러준다. 다시 말해서 만화의 기능은 어린이의 성장에 필요불가결의 요소들이며 그 영향은 학교 교육이상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나라의 만화들은 상당히 많은 문젯점을 안고 있다.
첫째, 방법상의 과오다. 권선징악·반공 등 주제 설정은 나쁘지 않은데 그 처리 방법이 너무 탈선적이고 잔인한 것이다.
둘째, 행동만을 우선시킨 반면 정서와 사고가 부족한 점이다. 인간은 행동과 사고의 조화를 이뤄야만 하는데 우리 만화의 이런 경향은 어린이들을 정서적 불구자로 만들 우려조차 있다.
세째, 「리얼리티」가 부족하고 부자연스럽다. 아동 만화의 주인공들은 예외 없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데 이것은 너무 황당무계하다.
넷째,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선·악 대결주의를 고집한다는 것이다. 이런 만화들은 인간상실을 부채질한다고도 볼 수 있다.
다섯째, 용어와 그림의 조잡. 국어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우리의 시각능력마저 둔화시키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나라의 만화가 이제 개선해야할 방향은 우선 명작의 만화화다.
다음 잃어버린 「유머」를 되찾아서 사물에 대해 여유있게 대처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또 만화의 소재를 일상 생활과 밀접한 정서적 사건에서 찾아야 한다. 만화 제작자들이 아동만화를 상품으로 보기 전에 하나의 교재라는 점을 상기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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