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경제교육] 심이택 대한항공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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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우리가 자랄 때는 하루 세끼 걱정을 하지 않으면 잘산다고 했을 만큼 어려운 시절이었다. 두세살 터울의 고만고만한 형제들에게 고루 용돈을 주려고 애쓰시던 어머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

학교에 가려고 가방을 메고 마당에 내려서면 부엌에서 손짓으로 불러 남이 볼세라 얼른 주머니에 용돈을 슬쩍 찔러 넣어 주실 때는 모두에게 줄 만큼 여유가 없는 날이었음을 한참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깨달았다.

그 어려운 시절에 여섯 형제를 대학까지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부모님은 힘든 내색 한번 하시지 않고 가족이 모이면 늘 따뜻한 정과 웃음으로 이야기 꽃을 피우곤 했다. '이래선 안된다''저렇게 해라'는 부모님 말씀을 들어본 적도, 매를 맞아본 기억도 없으나 형제들 모두 잘못됨이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면 직접 모범을 보인 '화목''공평'이 바로 가정교육이고, '잘 하고 있느냐'는 말씀 한마디로 스스로 책임지는 가르침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다들 커서 자기 몫을 하고 있지만 세 아들을 키우면서 집사람과 자주 말씨름을 했다. 학교 선생님이었던 집사람은 모든 일을 직접 확인하고 엄하게 키우려고 했고, 일곱 남매 속에서 자란 나는 보다 자유롭게, 그러나 스스로 챙길 수 있게 기르고 싶었다.

아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백일.돌.생일, 그리고 학교에서 상을 타올 때마다 아이들 몫으로 생기는 것은 각자의 은행 통장에 넣어 주었고 통장은 스스로 보관하도록 해 저축 금액이 불어나는 재미를 느끼도록 했다. 직장에서 돌아오면 주머니에 남은 동전을 세 아이의 돼지 저금통에 넣었다. 아이들과 함께 돼지 저금통이 채워져가는 기쁨을 나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또래에 맞게 주급(週給)으로 용돈을 주고 계획적으로 쓰도록 했다. 모자랄 경우 형제끼리 빌려 쓰고 갚도록 해 작게나마 빚을 지는 경험도 함으로써 용돈을 철저히 관리하는 습관을 갖게 했다.

특별히 꼭 써야 할 일이 있으면 별도로 청구하는 길도 열어줘 친구들 사이에서 궁색을 떨지 않게 했다. 조무래기 친구들끼리 떡볶이 파티가 고작이지만 '얻어먹기 보다는 사라'는 것이 내 생활신조였던 만큼 정당한 용처에 대해서는 특별 지원을 한 셈이다.

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 집에 돌아와 보니 2백~3백 가락은 됨직한 엿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영문을 물었더니 '당신이 아이들 가르친 대로네요'라며 집사람은 빙긋이 웃기만 했다.

초등학생 1학년인 막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육교 밑에서 얼굴을 온통 목도리로 감고 눈만 내놓은 채 엿 목판 앞에서 웅크리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이 추운데 저걸 다 팔아야 들어가시겠구나'하는 생각에 학급비 거둔 돈으로 그 엿을 몽땅 떨이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가슴은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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