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어지는 중공의 대소감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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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도차이나」사태 이후의 중공 외교는 소련을 제1의 적으로 간주해 온 기본 노선을 더욱 심화시키고 여기에 구체성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급속히 움직이고 있다.
그동안 북경이 외교적 행동을 통해서나 선전 활동을 통해서 분명히 한 이 주체성은 미국의 후퇴로 생겨난 동남아 지역의 힘의 공백 지대에 소련이 접근하는 것을 막고 「유럽」에서의 화해 기운이 더 이상 성숙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기도로 나타나고 있다.

<대소 비난 전례 없이 격렬>
이와 같은 기도는 결국 혁명 세력을 자처하는 중공으로서는 어울리지 않게 현상 고정 세력의 속성들을 드러내고 있다. 북경의 지도자들은 중·소 국경에 펼쳐진 제1전선에서 열전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동남아와 「유럽」 및 제 3세계로 대소 견제 정책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입장이다.
지난 2일 중공의 신화사 통신은 『지금 서구의 상황은 2차 대전 발발전과 흡사하며 「브레즈네프」도당은「히틀러」의 전철을 밟고있다』고 비난했다.
이와 같은 극렬한 비난의 배후에는 최근의 「유럽」안보회의 진전 과정이나 월맹의 소련접근 정책이 중공에 대한 소련의 압박을 남북에서 동시에 강화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중공은 소련의 이와 같은 남북 협공 가능성에 대비하여 「유럽」의 긴장 완화 무드를 동결시키고 동남아 주둔 미군의 철수를 반대하면서 이 두 지역과 경제적 유대를 강화한다는 양면 외교를 펴고 있다.

<소 믿는 유럽인들이 순진>
중공은 우선 「유럽」에서 소련 주도 아래 추진 중인「유럽」안보회의에 동조하는 것은 소련의 침략적인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쓸데없는 짓이라고 주장한다.
중공은 서구 제국에 대해 소련의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면서 「성동격서」, 즉 중공쪽을 치는 체하면서 실제로는「유럽」을 노리고 있다고 은근히 겁을 주고 있는 것이다.
금년초 중공을 방문한 서독의 골수 보수파 정치가 「프란츠·수트라우스」에게 교관화 외상은 한쪽으로 전쟁 준비를 하면서 평화를 떠들어대는 소련을 그대로 믿어버리는「유럽」인들이 너무 순진하다고 걱정했다.
중공은 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소련의 「유럽」침략 의도에 대항하는 군사기구로서 유용하며 구주공동시장(EEC)은 「유럽」의 독립성을 지켜 주는 존재로서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 표명해왔다.
지난 5월 중공을 방문한 EEC대외 담당대사「크리스토퍼·솜즈」경은 주은내가 중공과 「유럽」의 관계 개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고 전했다.
4년전만해도 중공은 EEC를 『제국주의적 모순의 중심지』 이며 『미국의 꼭둑각시』라고 비난했었다.
결국 중공은 「유럽」에서의 동·서 화해가 중·소 국경의 압력과 반비례한다는 전제 아래 「유럽」이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강력한 존재로 남아 소련에 대한 대응 세력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따라서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의 군사 및 경제「블록」을 인정하는 정책상의 유연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동남아 주둔 미군에 대해 중공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중공은 인지 공산화후 미국이 물러난 힘의 공백 지대에 소련이 침투하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을 맞은 중공부수상 등소평은 『앞문에서 늑대를 내쫓는 사이에 뒷문으로 들어오려는 호랑이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비 태, 미군 철수 요구 잠잠>
이미 공산화한 월남의 「캄란」만 해군 기지를 소련이 사용하리라는 풍설이 나도는 가운데 중공의 견해를 대변하는 「홍콩」의 공산계 신문 문회보·대공보들은 『미군은 절대로 철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보도했다.
중공은 또 인지 「쇼크」로 중공「러쉬」를 이룬 동남아의「말레이지아」·「필리핀」·태국 등과의 수교 조항에『다른 나라의 국내 문제를 간섭하려는 어떤 패권주의에도 반대한다』는 귀절을 삽입시켰으며 중공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자국 내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기지의 철수를 요청했던 「필리핀」과 태국 등도 중공과의 국교 수립 이후 미군 철수 요구의 소리를 오히려 낮추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중공의 「남의 손 빌기」 전략이 영속적인 정책이 아님은 물론이다. 『서기 2000년에는 미·소에 필적할 경제 강국이 된다』는 주은내의 말처럼 중공은 「유럽」에서는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제적 유대를 강화하고 동남아에서는 미군 주둔을 허용함으로써 일단 소련과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이 균형의 저울대를 대국으로 성장하는 디딤돌로 이용하려는 계산이 감추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김영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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