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5백원 송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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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자기라는 정체불명의 호칭이 있다. 작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신혼부부 사이의 일상어가 된 모양이다. 이를 보고 할아버지는 이맛살을 찌푸린다. 할머니는 부러워한다.
어느 고현학자에 의하면, 당초에는 술집 여자들의 관용어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손님을 사장님·선생님이라 부르다가 낯이 익어지면 「자기」라고 부르게 된다는 것이다.
「자기」는 「여보」 「당신」보다는 친밀감이 적다. 그러나 사장님·선생님 하는 것보다는 훨씬 가까운 사이를 나타낸다.
그러니까 「여보」 「당신」의 사이까지에는 이르지 못한 남녀의 사이에 친밀감을 돋워 주는 말로 「자기」가 시작됐다고 풀이된다. 한마디로 모호한 사이를 모호하게 부르는데 「자기」는 안성마춤이다.
요즘 젊은애인들 신혼부부들끼리 또 「자기」를 애용하는 심리도 비슷할는지 모른다. 「여보」 「당신」이란 호칭에는 어딘지 낡은 티가 난다. 산뜻한 맛이 없다. 신부가 처음부터 쓰기에도 좀 쑥스럽다.
그래서만도 아니다. 「자기」의 대칭어는 마땅히 「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나 「자기」나 따지고 보면 같은 뜻이 된다.
적어도 「나」와 「너」 의 사이에서만큼 강한 대립의식이 「자기」라는 호칭에는 없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자기」는 누구를 호칭하는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명하게 시비를 가리지 않고 넘길 때 혹은 정도 솟아오를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에는 언제나 분명하게 시비를 가려야할 일이 있는 것이다.
기각되어도 기각되어도 일곱번씩이나 끈질기게 송사를 해온 한 시민이 있다.
그는 2년 전에 즉심에서 1천5백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것이 억울하다는 것이다.
1천5백원이라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미 그는 지난 2년 동안의 소송에 13만원 이상을 썼다.
그에게 있어서는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저지르지 않은 죄 값은 치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아무리 1천원짜리 벌금이라도 물고 나면 벌금형을 내린 재판에 승복하는 것이 된다. 아무리 즉결심판이라고 하지만 그는 법을 어긴 죄인이 된다.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1천원을 물고 풀려 나온 것만도 다행이라 여길지도 모른다. 자칫 항고하다가 오히려 혹 떼려다 혹 붙이는 격이 될 염려도 있다.
더우기 죄란 남들 앞에 낯을 들 수 없는 죄악감이 따라야 한다.
하기야 천원 정도의 벌금형에서는 그런 죄악감을 느끼지 않는게 보통이다. 뭣이 어떻게 잘못되어 있다고 따지고 깊이 파고 들어갈 필요도 없다.
그저 「나」와 「너」의 사이를 「자기」라는 말로 얼버무리려는 풍토가 만들어 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풍토 속에는 박씨는 그저 『미친 사람』으로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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