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항해를 재현하면서…「삼한해로 답사」 선상 좌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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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회=삼한해로 답사는 이제 서해항로 답사를 모두 끝냈으나 지금까지는 항해에 있어서나 유적 답사에 있어서 하나의 시험적인 구간이었읍니다.
▲김=인천에서 군산까지는 당초 계획대로 별로 예인 없이 노를 저어왔지만 군산에서 우수영까지는 주로 예인하여 항해를 계속했습니다. 기상관계와 남해안을 보다 면밀히 조사하기 위해 일정을 단축시킨 것도 그 이유의 하나이지만 노를 젓는 「한호」의 경우는 항상 간만의 차와 이에 따른 조력을 이용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예인 없이는 항해가 거의 불가능했다고 봅니다.
▲각천=애초 이 계획을 세운 것은 고대항로와 지금의 항로가 거의 변화하지 않았을 것이다는 생각에서였읍니다. 삼한 해로가 바로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문화·문물이 전래된 길이라고 할 때 이 계획을 실천함으로써 그 당시의 항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읍니다.
그동안의 항해를 해오면서 과거에는 하루 10시간 노를 저어 40km는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실제로는 하루 6시간 20km밖에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항해시기도 추위·파도·식량 등의 문제로 여름이 아니면 불가능했으리라고 보며 이런 여러 가지 점에서 현재 일본 내에서 사문서처럼 취급되고 있는 왜인전이 살아있는 자료가 될 가능성도 짙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삼한해로 답사가 한국에서는 처음 있는 계획이었던 만큼 준비과정에서의 어려운 점도 많았고 항해상의 문제점도 하나 둘씩 나타났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방=항해상의 문제는 ①선박구조상의 문제 ②조류와 바람의 이용문제 ③해상 지식에 관한 것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①항은 고승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보아 굳이 문제삼을 수는 없다고 하나 모선을 이용한다는 점에서 고대 목선으로 항해한다는 의미가 감소된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②·③항에 대해서는 조력이나 계절풍 등을 이용한 근거리 연안 항해에 대한 실험이 적절히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며 고려·이조 때의 기록에는 항로에 있는 섬·뭍의 이름과 위치가 상세히 서술되고 있으나 일정관계로 이를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 것도 아쉽습니다.
▲금자=고려나 이조시대의 기록대로 항해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 하지만 안전 항해를 위해서는 항로가 조금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이제까지 어려운 항해를 계속해 오면서 성과라면 어떤 것이 있을는지요.
▲최=기초 조사에서 소홀히 되었던 유적이 이번 답사를 통해 대량 발견되었다는 것은 가장 큰 성과중의 하나라고 봅니다.
특히 충남보령군오천면진촌리와 전남신안군 패총에서 나온 무문토기등의 발견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읍니다.
이러한 유적을 통해서 한반도 문화가 일찌기 근해 도서지방에 진출했고 이러한 진출은 삼한해로 답사가 찾고자 하는 항해술, 다시 말하면 선조들의 어로·근해 항해가 지금 생각보다 훨씬 경험이 풍부했고 기술이 발달된 상태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조력문제인데 한사리·한조금에는 항로변경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배웠읍니다.
▲등구=일본에서 이번 해로 답사 계획을 세울 때 하루 10시간씩 노를 저어 40km를 갈 것으로 생각했지만 조류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읍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조류의 비중이 항해에는 무엇보다도 크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읍니다.
▲김=특히 군산∼부여항로는 조류 이용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각천=결론적으로 이번 항해는 비록 모선의 예인이 있었지만 ①여름철에 항해했을 가능성의 확인과 ②바람을 이용하지 않았느냐 하는 연구과제를 얻었다는 점은 매우 큰 성과였읍니다.
▲사화=그러면 앞으로 남은 항로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각천=서해안에서는 전혀 바람을 이용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남은 항해에서는 돛을 달아 시험해보고 싶습니다.
▲최=이번의 삼한해로 답사도 고대인들의 생활방식을 따라 그들의 항해방법에 근접할 수 있는 조사·실험이 필요하다고 보며 뱃길은 이조 때 수련의 뱃길을 역이용한 것이지만 고고학·역사·지리학뿐 아니라 여기에 대한 조선학·지질학·해양학 등의 안식 있는 한국학자의 참여가 아쉬웠읍니다.
또한 이 기회에 일본에의 문화전파가 한 「루트」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삼한의 각 지역과 복잡 다양한 「루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해야 하며 삼한사회와 지석묘·무문토기 사회와의 편년(시기구분)이 정립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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