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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그머니 돌아온 금피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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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3월 말 금융회사 주주총회를 앞두고 감사와 사외이사에 금융감독원 출신들이 속속 내정되고 있다. 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 주춤했던 ‘금피아(금융감독원 임직원 출신과 마피아를 결합한 말)’ 출신들의 금융권 진출이 다시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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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주총을 여는 대구은행은 이석우 현 금감원 감사실 국장을 감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김광식 전 금감원 기업공시국장을 감사로 내정했고, 신한카드도 김성화 전 금감원 신용감독국장을 감사에 선임키로 했다. 현대카드는 김준현 전 금감원 저축은행서비스국장을 영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에는 이석근 전 부원장보가 신한은행 감사에 임명됐다.

 사외이사로 진출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각 금융회사의 공시 자료에 따르면 메리츠금융지주는 새로 선임하는 사외이사 3명 중 2명을 금감원 출신인 전광수 전 금융감독국장, 이명수 전 기업공시국 팀장으로 채운다. 삼성카드도 양성용 전 부원장보, 롯데손해보험은 강영구 전 부원장보를 각각 사외이사로 영입한다.

 금감원은 과거 은행·카드·보험사 등에 퇴직을 앞둔 간부를 감사로 추천하는 관행이 있었다. 임원을 지냈거나 정년을 채우지 못하는 간부를 챙겨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2011년 5월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계기로 감사로 내려보내는 것을 하지 않겠다는 조직 쇄신안을 발표했다. 금감원 퇴직 직원들이 저축은행 감사 등으로 재직하면서 경영진·대주주와 유착해 불법대출·분식회계 등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기 때문이다. 그해 12월에는 윤리 강령까지 뜯어고쳐 전·현직 임직원을 금융회사에 감사로 추천해서는 안 되며, 이런 요청이 와도 응하지 못하도록 명문화했다. 이런 규정을 만드는 걸 주도한 사람이 최수현 금감원장(당시 수석부원장)이다. 최 원장은 평소 이런 금감원의 감사 진출 관행을 개혁한 것을 업적 의 하나로 꼽는다.

 하지만 이런 공백을 놓치지 않고 감사원 출신들이 금융회사 감사에 대거 진출했고, 자리를 뺐긴 금감원 내부의 불만도 커졌다. 익명을 원한 금감원 한 간부는 “획일적인 규제 때문에 감사원 출신들과 오래 전에 퇴직한 선배들만 금융사 감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이제 숨통을 틔워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전·현직 간부들의 감사 선임 움직임에 금감원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공직자윤리법(제17조)은 4급 이상 공무원과 금감원 임직원이 퇴직일부터 2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기업체 등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현직은 금융회사 검사 업무 등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퇴직한 지 2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피아 감사에 대한 외부의 시선은 곱지 않다. 2011년 이후에도 퇴직 후 일정 기간이 지났거나, 각종 협회를 거쳐 금융회사 감사나 사외이사로 가는 것은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고객정보 유출 사건이 난 카드 3사도 모두 금감원 출신이 감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오정근(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전직 소속 기관의 영향력 없이 어떻게 퇴직 직원들이 금융회사 감사로 갈 수 있느냐. 감사원이든 금감원이든 공무원과 유관기관 출신들이 감사로 가면 민간 금융사의 방패막이가 될 수밖에 없는 만큼 독립된 민간 전문가를 감사로 선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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