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높다’는 주택담보대출시장의 상식이 깨지고 있다. 고정금리 주택대출을 늘리라는 정부 방침에 일부 은행이 혼합형대출 금리인하로 화답하기 시작했다. 2011년 정부가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발표한 뒤 한동안 나타났던 금리역전현상이 3년 만에 재연됐다.
앞장선 건 국민은행이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중순 ‘포유장기대출’ 이자율을 전보다 1%포인트가량 확 내렸다. 이 상품은 초기 3~5년간 고정금리고, 이후 변동금리로 바뀌는 혼합형 주택대출이다. 7일 현재 포유장기대출(5년 고정금리, 비거치식) 금리는 3.27~4.62%.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신규 코픽스 연동) 금리 3.3~4.67%보다도 낮다. 대출기간이 비슷한 경우 5년 고정금리 대출 이자율이 변동금리보다 0.15~0.2%포인트나 저렴하다. 이 은행 서진석 여신상품부장은 “(훼손됐던) 고객 신뢰를 회복하고, 고정금리를 늘리라는 정부 정책에 발맞추기 위해 금리를 크게 내렸다”며 “금리가 싸다 보니 창구에서 고객들이 이 상품을 주로 선택한다”고 말했다.
농협은행과 우리은행도 이 흐름을 따라갈 계획이다. 혼합대출 금리를 변동금리와 비슷하게 낮춰 상품 경쟁력을 높이기로 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5년 고정금리의 혼합형 주택담보대출 이자율을 낮추고 특판을 할 것”이라며 “금리를 어느 수준까지 낮출 수 있을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평균 4% 수준인 3년 고정금리짜리 혼합대출의 이자율을 0.2%포인트가량 낮출 예정이다. 혼합대출은 고정금리 기간에 따라 판매금액의 30~50%를 고정금리 대출실적으로 인정받는다.
은행의 이런 움직임은 정부 정책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현재 15.9% 수준인 고정금리 대출 비중을 2017년까지 40%로 늘리라’는 목표를 발표했다. 기존 목표치(2016년까지 30%)를 대폭 올려 잡았다. 앞으로 시장금리가 오르면 변동금리 대출자가 충격을 받을 수 있으니 대비하자는 취지다. 고정금리대출을 키우려면 은행으로선 금리를 내리는 것 말고는 뾰족한 수가 없다. 지난 2011~2012년에도 각 은행이 변동금리보다 싸거나 비슷한 고정금리 대출상품을 잇따라 선보인 뒤 고정금리 비중이 크게 늘었던 경험이 있다.
문제는 지금 시장에서 장·단기 금리차이가 워낙 벌어져 있단 점이다. 혼합대출은 기준금리로 금융채 5년물(연 3.421%)을 쓰는데, 변동금리의 기준인 신규 코픽스(연 2.64%)보다 0.8%포인트가량 높다. 정상적인 시장원리대로 해서는 혼합대출금리를 무작정 낮추기 어려운 이유다.
아직 금리를 내릴지 말지 결정 못한 은행은 고민에 빠졌다. 한 시중은행 담당자는 “정부 정책에 맞추려면 금리인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국민은행처럼 금리를 확 낮추면 자칫 역마진 가능성이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금리를 웬만큼 낮추지 않아선 변동금리에 익숙한 고객의 눈을 돌리기 어렵다. 또 다른 시중은행 가계대출 담당자는 “과거 정부 정책에 따라 고정금리 대출을 받았는데 시장금리가 더 떨어져 손해본 경우도 많다”며 “아직까진 시장금리가 앞으로 오른다는 보장이 없어 고정금리를 늘리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고정금리대출 늘리기에 좀 더 속도를 내고 있다. 우선 다음 달부터 고정금리대출로 인정해주는 ‘금리상한부 대출’ 신상품이 은행에서 출시될 예정이다. 시장금리에 따라 적용 이자율이 달라지지만, 금리가 오를 땐 제한폭이 미리 정해져 있는 상품이다. 예컨대 만기 5년이면 최고 1.5%포인트까지로 인상폭을 제한하는 식이다.
다만 초기금리는 일반 변동금리 상품보다 조금 높게 책정된다. 이세훈 금융위 금융정책과장은 “지금은 초기금리가 대출 선택의 기준인 게 사실”이라며 “은행 창구에서 잘 설명하면 미래 위험(금리 인상)을 피하기 위해 조금 비싼 금리를 지불할 소비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