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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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민학교 과정에서의 한자 교육문제가 다시 논의되고 있다. 한자「사용」아닌 한자「교육」인 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무려 28년이나 두고 국민교 교과서에 오르내린 한자는 이제 그만 정착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 동안의 무위한 방황을 보상하기 위해서도 더욱 성의 있고 치밀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우리 말 가운데 한자어가 60%이상이나 되는 현실에서 그 교육이 외면되어 온 것은 여간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한자의 혼용이든, 아니면 한글만의 전용이든 그것은 각자의 편의에 맡길 일이다.
그러나 우리문화의 구조 자체가 한자문화권에 바탕을 두고 있는 상황은 쉽사리 바꿀 수 없다. 실내의 공기를 바꾸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자교육을 반대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문제로는「비능률」이 지적되고 있다. 이 문제야말로 탁상의 토론보다는 실험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이웃 일본의 경우, 그들은 일본문자를 갖고 있으면서도 한자교육에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역시 한자문화권의 한 테두리에 있는 점에서도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바로 그 일본은 현재 1만여 유치원·보육원에서 한자를 가르쳐 주고 있다. 한 실험보고에 따르면 국민 교 3년까지 약 1천자의 한자는 무리 없이 익힐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또 조기교육으로 이루어질수록 정신적인 부담을 덜어 준다고 한다.
일본의 아동잡지들을 보면 벌써 1학년부터 한자가 혼용되어 있다. 옆에 토가 붙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다만 토일 뿐 한자는 생활문화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들이라고 교육의 능률과 비능률을 생각하지 않았을 리 없다.
오히려 비능률은 한자를 별안간 한글로 바꾸어 놓은 「의식의 단절」속에 더 있을 것 같다. 무려 28년을 두고 불안정한 문자교육을 실시 해온 것 자체가 비능률의 표본이 될 만 하다. 시행착오는 이제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구미의 경우를 보아도 국민교육의 근간은 문자교육에 있다. 글을 쓰는 법에서 문장을 구성하는 법에 이르기까지 여간 정성을 들여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니다. 대학의 초급학년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계속된다.
올바른 문자의 이해 없이는 올바른 사고나 의식도 기대할 수 없다. 문자는 그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랜 역사를 두고 도구로 삼아 온 문자를, 더구나 구조적으로 바꿔친다면 그 혼란은 좀 체로 가라앉힐 수 없을 것이다. 한자사용 아닌 한자교육의 뜻은 그런 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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