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풀이 장난에 떤 공포의 1년 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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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온 마을이 1년 반 동안이나 소가 독살되고 집에 불이 나는 등 공포에 떨었으나 알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사는 20대 청년이 심심풀이로 시작한 불장난이었음이 밝혀졌다. 마을의 공포는 1년7개월이나 지나도록 계속됐으나 경찰은 지금까지 단순사건으로 처리, 본서에조차 보고하지 않았고 주민들은 『산신(산신)의 노여움을 샀다』며 불안해했었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7일 안양경찰서가 한대석씨(21·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고기리358)를 검거, 상습절도·재물손괴 및 방화 등의 혐의로 구속함으로써 밝혀진 것.
한씨의 범행이 시작된 것은 73년9월15일부터. 인천 선인중학을 2년 중퇴하고 한때 서울영등포구청 운전사로 일하다 그만두고 집 농사일을 거들어주고 있던 한씨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같은 마을 이계돈씨(45)의 2년생 농우를 쥐약을 먹여 죽인 후부터 야릇한 범죄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는 것. 10월10일에도 같은 방법으로 이정록씨(45)의 소를 죽였으나 마을사람들이 별로 놀라지 않는데 절망, 마을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하기 위해 방화행각을 시작했다.
73년10월28일 저녁7시30분쯤. 이정섭씨(45)의 행랑채 추녀에 성냥불을 그어댔다. 한씨는 온 마을을 뛰어다니며 화재소식을 알렸다. 마을사람들의 당황하는 모습에 쾌감 같은 것을 느꼈다.
74년9월에는 김보영씨(37)집 울타리에, 이석돈씨(40)집 짚더미 등에도 계속 일어났다. 이때부터 소박한 마을에서는 산신의 노여움으로 불이 난다는 소문이 퍼져 「마을의 안정」을 비는 산신제까지 올리기도 했으나 지서에서는 사건을 유야무야로 처리, 본서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부터 한씨는 불 구경에도 싫증을 느꼈다. 새로 시작한 것이 절도행각. 74년10윌30일 하오 이정묵씨(35)집 1·5마력짜리 모터를 훔쳐 6만원 받고 팔아넘긴 후 동네이장인 이정원씨(35)집에서 손목시계 2개를 훔쳐 주민들에게 발각될 때까지 그의 괴벽은 농우독살 4건(피해액 40만원), 절도 12건(36만원), 방화 11건(1백5만원)등 모두 27건에 달하고있다.
한마을 30여가구중 피해를 보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였는데도 『주민들이 전혀 모르고있는 사실이 더욱 재미있었다』며 한씨는 경찰에 잡혀와서도 뉘우치는 빛이 없었다. <안양=이순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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