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원 넘는 사모펀드도 의결권 인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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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국내에서도 미국의 블랙스톤이나 아이칸엔터프라이즈 같은 대형 사모펀드(PEF)가 탄생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사모펀드의 기업 인수를 제한하던 규제가 풀려서다. 사모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받은 자금으로 기업을 사서 가치를 끌어올린 뒤 팔아 수익을 돌려주는 펀드다.

 정부가 6일 발표한 인수합병(M&A) 활성화 방안에 따르면 사모펀드가 대기업 수준(자산 5조원 이상)으로 커지더라도 인수 기업에 대한 경영권을 제한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산 5조원 이상의 사모펀드는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돼 인수 기업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인수 뒤 5년 안에 계열사를 팔아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투자 지분만큼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고 계열사로 계속 보유할 수 있다.

 다만 이 혜택은 미래에셋·한국투자금융지주 같은 금융전문그룹이 만든 사모펀드나 MBK파트너스·보고펀드를 비롯한 사모펀드 전문회사에만 주어진다.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에 혜택을 줄 경우 과도하게 계열사를 늘릴 걸 우려해서다.

 사모펀드가 비상장기업을 인수한 뒤 주식시장에 상장시키는 것도 허용한다. 원래 사모펀드의 ‘먹튀’를 막는다는 이유로 상장을 금지했지만, 이로 인해 기업들의 상장을 어렵게 하는 부작용이 커졌기 때문이다.

 M&A를 할 때 걸림돌로 작용했던 세금 부담은 확 줄인다. 우선 코스닥 상장기업이 다른 기업 지분을 절반 넘게 인수할 때 붙이던 취득세(4%)를 면제해준다. 지금은 코스피 기업만 면제를 받고 있다. 주식교환 방식으로 기업을 인수할 때 피인수기업 주주에게 매겼던 양도세(10~22%)는 나중에 주식을 팔 때 내도 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원유·철강·석탄과 같은 제조업체의 해운회사 인수도 허용해준다. 해운업 불황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해운업계의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서다. 또 유망 중소·벤처기업이 M&A를 통해 증시에 상장할 수 있도록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의 자기자본 규모를 100억원에서 30억원으로 낮췄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이번 대책으로 기업 구조조정과 벤처 육성은 물론 공공기관 자산 매각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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