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범에만 급급 화재예방 외면한 건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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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0일 새벽의 남대문시장 화재사건은 최소단위면적의 불로 최장의 진화시간을 소비한 기록을 세웠다. 화재예방은 철저히 외면한 채 도둑만을 막을 욕심으로 겹겹이 안으로 잠근 셔터 등 건물자체의 내부구조와 좁은 소방통로·고압선 등 진화방해조건이 모조리 갖춰진 가운데 불길은 잡힐 줄 모르고 장장 12여시간 활개를 쳤다.
불이 난 D동 상가의 1층 출입문은 모두 16개. 이 문들은 수동식 철제셔터로 한결같이 안으로 잠그고 자물쇠까지 채워 출동소방관이 단 2개의 셔터절단기로 자르고 들어가려 했을 때는 이미 지상4층 건물과 지하1층까지 활활 타고있었다. 또 각층 출입문 안에는 다시 2중으로 방범용 셔터가 안으로 잠겨 건물 밖에서 뿜는 물줄기가 화재중심부까지 미치지 못해 진화작업이 늦었다.
둘째로 상인들이 좁은 면적에 비해 너무나 많은 각종 가연성상품을 한길이 넘도록 차곡차곡 쌓아둬 이들이 연소확대를 일으키는 바람에 화재발생 9시간이 지나도록 소방관들이 건물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특히 1, 2층 의류점·양복점·양품점등의 화학섬유계통 상품이 타면서 아황산개스·일산화탄소·탄산개스 등 유독개스가 내뿜어져 소방관들은 연기속으로 들어갈 엄두조차 못 냈다.
세째는 층마다 설치하게 돼있는 두께 1·5㎜이상의 갑종 방화셔터장치가 안 돼있어 1층에서 난 불이 순식간에 온 건물로 옮겨 붙은 요인이 됐다.
또 건물주변의 소방도로도 6m밖에 안돼 최소 8m이상이라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소방차의 통행이 불편했고 건물주변에 거미줄처럼 늘어선 고압선·전선 등과 점포마다 2m쯤 길쪽으로 나오게 설치한 차양막과 노점대도 소방작업을 지연시켰다.
이밖에 소방당국의 장비부족도 큰 문제. 현재 서울시 소방본부에는 공기마스크 40개, 무인방수차 1대, 조명차 1대, 셔터절단기 2개밖에 없어 소방관이 2백여명이나 나왔으면서도 실제 효과적인 소화작업에 동원된 숫자는 장비 수만큼이나 적었다.
이날 진화작업을 하던 한 소방간부는 공기마스크 등 개인장비가 충분하고 연기와 유독개스가 많은 화재 때 꼭 필요한 무인방수차가 여러대 있었다면 피해는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말하기도 했다. <신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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