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방들의 대미 의구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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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의 방위공약은 과언 믿을 수 있는 것인가. 「인도차이나」의 공산화이후 자유세계에 제기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미국의 맹방으로부터의 이 같은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미국의 동맹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미국의 지원을 받는 동맹국들에만 타격을 주는 것이 아니고 미국 자신의 안전과도 연결된 자유세계의 전체방위질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전인지반도의 공산화 이후 미국정부뿐 아니라 의회와 언론에서까지 새삼 미국의 대외방위공약의 준수를 다짐하는 일련의 조치가 잇따르고 있는 소이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지금 미국정가가 신고립주의로부터의 탈피하는 듯한 경향을 보인다해서 이를 너무 안일하게 평가해선 안 된다.
인지에서의 패배에 대한 반동에서 온 잠정적 「무드」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미 하원본회의가 해외주둔 미군 7만 명 감축 안을 3백11 대 95의 압도적 표 차로 부결시킨 것은 최근까지의 미국의회의 분위기에 비추어 엄청난 변화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렇게 「무드」가 급변할 수 있다는 자체가 불안한 요소이기도 하다. 국제관계란 원래 자국의 이해관계에 대한 냉정한 계산에 바탕을 두는 것이다.
본보에 작보된 바 19세기 영국의 수상과 외상을 역임한 「파머스턴」경은 『대국엔 영원한 친구란 없으며 영원한 이익만이 있을 뿐』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파머스턴」원칙이라 불려지는 이 세력균형과 대국주의외교 원칙은 바람직하지는 못할망정 지금의 국제정치현실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미국의 장기정책의 방향은 일반적 「무드」보다 『미국이 앞으로 대외적 책무를 맡는데 있어 보다 노숙성을 보여야 한다』는 「키신저」의 월남패망 직후 논평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동맹책무의 노숙성이란 동맹관계의 보다 고도의 선택 및 한정을 뜻한다.
사실 미국정부는 최근 동맹국에 대한 방위공약과 미국의 세계적 방위전략을 면밀히 재검토하고 있다고 외신은 전한다. 면밀한 검토 끝에 재편된 미국정부의 방위공약은 현재보다도 훨씬 신빙도를 높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미국정부가 명백한 방위공약을 하더라도 의회와 국민여론의 결정적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지금의 미국의회와 언론의 대외 적극자세가 얼마나 지속되느냐에 있다. 인지전으로 인한 미국국민 일반의 압전풍조는 더욱 큰 문제다.
인지공산화 이전에 조사된 「해리스」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 민의 과반수(77%)가 미국의 무력개입을 지지하는 해외전쟁은 오직 「캐나다」에 대한 외부의 공격 때뿐이었다.
「유럽」방위를 위한 전쟁은 39%가, 「이스라엘」엔 27%, 한국엔 14%만이 무력개입에 찬성했다. 이 조사가 「인도차이나」공산화 이후까지 미국국민의 성향을 반영한 것으론 볼 수 없으나 추세만은 드러낸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대외적 취약성을 드러낸 시기와 미국 대통령선거 시기는 대개 일치해 왔다. 지금 같은 미국의 「무드」가 선거의 해인 76년을 넘길 수 있다면 그 추세는 오랜 기간 정착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잠복하고 있는 미국 민의 압전풍조가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을 배제하긴 어렵다.
따라서 우리의 장기적 국가안보의 방향은 자력안보·자주국방체제의 확립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자주역량의 배양은 미국의 선별적 방위공약을 장기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선별적 대외공약은 그 성격상 동맹국에 대해 더 큰 자력 부담과 보호받을 가치기준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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