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반미「데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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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17일 태국의 학생들은 미대사관 앞에서 격렬한 반미「데모」를 벌였다. 최근에 「캄보디아」에 나포된 미 상선을 구출하기 위해 미 해병대가 태국기지를 무단 사용한데 대한 항의 「데모」라고 한다.
같은 날 태국정부도 모든 미군의 철수요구까지도 암시하는 엄중한 항의각서를 미 대사에게 전했다. 미국이 사전양해 없이 해병대를 태국에 진주시킨 것은 분명한 주권침해다.
미국이 경솔했다는 비난을 받을 만도 하나. 서구에서였다면 과연 이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슬란드」의 경우가 연상된다.
「아이슬란드」는 인구가 20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여기에 살고있는 미군가족은 6천명이 된다. 미군기지자체가 「아이슬란드」에서는 네번째로 많은 인구를 갖고있는 도시처럼 돼있다.
이들이 「아이슬란드」안에 떨어뜨리는 돈도 동국 GNP의 3·4%나 된다.
그러면서도 미군병사들은 기를 펴고 다니지를 못한다.
미병은 하오10시 이후에는 절대로 기지밖에 나가지 못한다. 기지 밖에선 반드시 사복을 착용하고 다녀야한다.
이런 규칙을 미군병사들은 지키지 않을 수 없다. 규칙을 어기고 거리를 다니면 주민들에게 얻어맞기 일쑤다.
서로 싸우다 붙잡히면 오히려 미병 쪽만 투옥되는 것이다.
『돈도 벌어주고, 나라도 지켜주니 고맙기는 하다. 그러나 외국군인인 만큼 거기 알맞은 절도는 지켜줘야 한다고』 이것이 「아이슬란드」국민의 태도다.
그래도 미군은 이런 대접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아이슬란드」정부의 태도가 달라질 가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미군이 사전양해 없이 태국기지를 사용한 것은 혹은 평소의 태국정부측 태도에도 잘못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에 지금까지 태국정부의 주체의식이 뚜렷했다면 미군도 그러지는 못했을 것이다.
태국정부가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서 전에 없이 엄중한 항의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구한 억측도 돌고 있다.
어쩌면 태국은 최근에 적화된 인접국가들에 대한 체면치레를 위해서 엉뚱한 「제스처」를 보인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또 하나 의혹이 가는 것은 정부쪽 항의에 뒤이어 일어난 학생들의 반미「데모」가 혹은 어용「데모」는 아닐까 하는 점이다.
만약에 태국정부측의 태도에 항상 무게가 있었다면 굳이 학생들의 「데모」가 필요치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태국의 정부나 학생들이나 주체성 있는 행동을 하고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이번 사건도 「아시아」에 있어서의 미국의 위신이 크게 떨어진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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