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무슨 일이든 혼자 결정하기 힘들다는 30세 미혼 직장 여성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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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30세 미혼 직장 여성입니다. 전 무슨 일이든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합니다. 식사 메뉴 고르기 같은 작은 일부터 업무에 이르기까지 혼자 결정하기가 무척 힘듭니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고, 주변의 지지가 없으면 불안하기만 합니다. 선택 후 주위에서 부정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금방 결정을 후회하기 급합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 대안을 놓치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어떻게 하면 결단력 있게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요.

A 중국집 가서 짬뽕 먹을지 짜장면 먹을지 고민 안 해 본 사람, 아마 없을 겁니다.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오늘 짜장면 먹고 다음에 짬뽕 먹으면 그만인데도 결정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짬뽕과 짜장면을 반씩 담은 틈새 상품인 짬짜면까지 나왔죠. 그러나 선택이 쉽기는커녕 짬뽕과 짜장면 사이에 짬짜면까지 끼어들어 선택만 더 어려렵습니다.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심사숙고해 옳은 결정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심사숙고와 우유부단(indecisiveness)은 다릅니다. 우유부단은 결단력이 떨어지는 불안 반응입니다. 우유부단이 심하다면 내 스트레스 시스템이 과도하게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합니다.

 불안 자체는 비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스트레스 시스템이 잘 작동해야 위기 관리를 잘해 생존은 물론 성취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스트레스 시스템이 지나치게 작동하면 삶의 질이 떨어집니다. 현대 사회를 피로 사회라고 하죠. 과도한 불안에 다들 뇌가 지쳐버린 걸 말합니다.

 우유부단은 또 완벽주의에 근거합니다. 완벽에 대한 집착 때문에 불안해지고,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지나치게 다른 사람 의견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합니다. 혼자서는 쉽게 결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렵게 결정해도 계속 아쉬움이 남아 내 선택에 대해 만족하지 못합니다.

 강박적 느림(obsessional slowing)이라는 증상이 있습니다. 완벽에 대한 집착 때문에 사고와 행동이 병적으로 느려지는 걸 말합니다. 예컨대 책 한 장 넘기는 데 30분도 더 걸립니다. 혹시 빼 놓고 안 읽은 부분이 없나하는 불안한 마음에 수없이 같은 페이지를 읽는 겁니다. 우유부단도 일종의 강박적 느림인 셈이지요.

 우유부단은 사실 누구에게나 찾아 올 수 있습니다. 과감한 결정으로 회사를 성장시킨 경험 많은 최고경영자(CEO)가 어느날 갑자기 아무 결정도 못내리겠다며 클리닉을 찾기도 합니다. 경영 입스(Executive Yips)가 찾아온 겁니다. 입스 증후군(Yips syndrome)이란 프로 골퍼가 퍼트나 드라이버 샷을 할 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 탓에 스윙을 못하고 주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실력 문제가 아닙니다. 대부분 자기가 우승했던 코스에서 입스가 찾아오니까요. 입스 증후군 골퍼처럼 이 CEO에게 경영 입스가 찾아온 거죠. 회사 규모가 작을 때는 과감한 결정을 했지만 회사 규모가 커지고 결정에 따른 위험도가 커지니 어떤 결정을 해야할지 불안해지는 겁니다. 완벽한 결정을 해서 위험을 최소하겠다는 생각에 객관적 분석 자료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니 직감에 따른 결정을 점점 더 못해 우유부단이 심화합니다.

 빠른 결정을 하려면 직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직감은 영어로 gut instinct라 합니다. gut은 내장이라는 뜻이니 직역하면 내장의 직관입니다 그 만큼 빠른 본능적인 촉이라 할 수 있겠죠. 과학적으로 보면 직감은 내장이 아니라 뇌가 만듭니다.

 직감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많이 활용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배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논리적 분석을 통해 의사결정을 한 캐릭터가 직감적으로 결정한 사람한테 패하는 걸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큰 기업 창업자의 의사결정 과정을 봐도 참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직관에 의해 새 사업에 뛰어들어 성공시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느낌은 생각의 2차적 산물이기도 합니다. 일 마감 시간이 다가올 때 쫓기는 기분이 드는 것, 두툼한 상여금 봉투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처럼요. 그러나 느낌은 의식 못하는 상황에서 찾아 오기도 합니다. 직감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 직감 역시 엉뚱한 데서 툭 떨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 뇌 안의 정서 신경망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반응입니다.

 직감이 어떻게 만들어 질까요. 우리 뇌는 새로운 사건과 선택, 그리고 사람을 만났을 때 경험하는 중요한 느낌을 경험과 함께 기억 저장 장치에 담아둡니다. 그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면 이성적 분석을 하기 전에 반응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왠지 저 사람이랑은 일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요. 여러 사람과 만났던 경험과 느낌이 결합돼 직감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결국 직감은 논리적 분석을 우회해 일어나는 빠른 결정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있지만 때론 직감적으로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생존에 문제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직감적 결정 시스템이 발달하게 되는 겁니다.

 현대 사회는 직감보단 객관적인 데이터에 더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직관이 다 맞는 것은 아니니까요. 직관만 믿다간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신 뇌과학은 직관이 매우 가치있는 정보라는 걸 알려줍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계속 이 사람이 영 아니다 싶으면 그 직감적 느낌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무작정 그 느낌을 따를 필요는 없지만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찬찬히 내 마음을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사연으로 다시 돌아와 우유부단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음 트레이닝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 과도하게 활성화돼 있는 불안-스트레스 시스템에 이완을 줘 스트레스를 푸는 겁니다. 이완은 아무 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를 사랑하는 활동입니다. 좋은 사람과 만나 속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 받는 것, 조용히 사색하고 걸으며 자연과 호흡하는 것, 그리고 문화를 즐기며 내 삶을 조명해 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마음이 이완돼 불안이 줄면 우유부단함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걸 경험할 겁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안이 아니라면 평소 과감하게 결단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처럼 무엇을 선택하든 기회비용이 비슷할 때 고민하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그러나 배우자 선택 같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다릅니다. 내 마음에 완벽한 만족 신호가 올 때까지 ‘빨리 결정하라’는 내 안팎의 요구를 견디는 배짱이 필요합니다. 우유부단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중요한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도 사실 불안 행동입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래 e메일 주소로 고민을 보내주세요. 윤대현 교수가 매주 江南通新 지면을 통해 상담해 드립니다. 사연을 지면에 공개하실 분만 보내주십시오. 독자분 신분이 드러나지 않게 익명 처리합니다. yoon.snu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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