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혜택의 편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자원의 한계 내에서 모든 개인의 건강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모델」이 어떤 것이냐 하는 문제는 적어도 자유와 평등을 표방하는 사회에서라면 핵심적인「이슈」가 아닐 수 없다.
이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 세계적인 흐름은 개인의 건강과 그 개인이 소속되어 있는 지역사회의 건강을 동일시하는「모델」에 기대를 거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의료인들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이 같은 문제가 제기되어 논의가 활발하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의료제도개선의 문제점과 방향』이라는 주제로 지난 4일 열렸던 제16차 대한병원협회「세미나」에서 우리나라의 의료제도가 대도시의 고소득층 위주라는 인상을 씻지 못하고 있고, 의료비가 너무 비싸 국민의 50%가 의료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실정이라는 것이 지적되고 이를 시정키 위해 국민의 경제부담을 덜어주고 골고루 의료혜택을 베푸는 지역사회단위의 의료「시스템」을 적극 추진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는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당국의 의료제도에 관한 계획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현실을 도외시하고 서민층을 외면한 것이어서 병원만 하더라도 도시집중화와 「매머드」화 현상만 빚었을 뿐이라는 분석에는 수긍이 간다. 동시에 최신시설과 양질의 의료진을 갖춘 대도시의 의료기관은 수가가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에 전 국민의 10∼15%에 지나지 않는 고소득층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되었고, 시·도립병원마저도 「베드」(병상) 이용률이 35%밖에 되지 않아 의료혜택의 편재가 심각하다는 진단이 충분히 납득된다.
현재 지출되고있는 의료비가 지나치게 중압적이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생활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지나치게 비싼 의료비 때문에 질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병원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는 국민이 50%를 상회한다는 엄연한 현실이 웅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빈부격차와 불평등심화의 확대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우려되고 있는 이때, 심각한 의료혜택의 편재현상은 단지 문제의 제기만으로 그치게 할수는 없는 것이다. 기왕 의료인들 사이에서도 높은 의료수가에 대한 자성의 소리가 있었다고 하니 당국과 의료계는 합심해서 이 기회에 서민대중의 건강문제를 사회와의 연대적 책임아래 그 지역사회에서 공동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주길 바란다.
알려진 바로는 전북 옥구군에서 지역사회 의료「시스템」을 실험적으로 실시한 결과 연간 1인당 5천 5백 원이던 의료비를 1천 7백 40원까지 격감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실험「케이스」이긴 하나 이와같은 「모델」은 누구나 값싼 의료비로 양질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하는 것이다.
의료의 본질적인 사명이 환자를 단순히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킬 뿐만 아니라 생산적인 활동에 능력껏 참여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인으로 복귀시키는 역할에서 찾아야함을 상기할 때 의료의 균점화 정책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