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임정대 <연세대 교수·수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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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3월21일자 일간지 사회면에는 「상류 부인들 백만원 대 도박」이란 제하의 「공무원부인」 등 11명 구속, 7명 수배란 부제를 달고 「육천통」이니 「삼천통」 등의 낯선 화투노름판의 내용까지 상세히 밝히고 사진까지 곁들였다. 무슨 죽을죄를 지었 길래 그다지도 머리를 깊이 파묻고 무슨 파렴치한 짓을 했길래 그다지도 얼굴을 감추려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퇴폐 풍조는 그들 부인들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이러한 사회적인 악풍은 신성한 학원에까지 밀려들어오고 있지 않나 싶어 경각심을 일으키게 한다. 하기야 오염된 공기를 마시는 학원이라 하여 예외일수야 있겠는가마는 어쨌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나 요사이 와서 어느 대학 교정할 것 없이 잔디밭 위나 빈 강의실에서는 자못 도박 풍의 긴장감을 얼굴에 담은 채 기백원, 기천원이 왔다갔다하는 풍경을 자주 보게 되어 두어 마디 소감을 적어 본다.
그들은 단순히 재미로 하는 짓이라는 변명을 할지 모른다. 그러나 백보를 양보하고 이해하려 하여도 지금의 시대와 분위기가 이러저러하니 만큼 그들의 변명에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장차 그들이 사회인이 되어 책임 있는 자리에 앉게 될 때 성실히 봉사하고 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건전한 생활 정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문제다. 안일하게 살기 위해 우연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책임 있는 자리에 임한다면 그들 개인 뿐 아니라 이 사회 전체가 가련하다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건전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도박이 성행할 수는 없다.
「상류 부인」과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은 사회적 지탄을 받아 마땅하거니와 어떠한 변명도 그 책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이 그들에게만 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든 기성인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정 부패의 사회적인 풍조와 이에 따른 불공평한 사회적 경제 구조가 보다 더 도박성을 성행케 한 근원적인 원인이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누구나 뼈아프게 번 돈이라면 어찌 1백만원짜리 판돈을 놓고 도박을 할 수 있겠는가.
한편 아직 부모의 호주머니에서 얻어낸 용돈으로 심심풀이 「트럼프」 놀이니 그 액수에 있어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른다. 「상류 부인」의 판돈이 1백만원이었고 학생들의 판돈이 1백원이었다 하더라도 학생의 「트럼프」 놀이가 「상류 부인」의 도박과 비교하면 그 사회적인 피해에 있어서는 오히려 전자가 더욱 심각한 바가 있다고 본다. 부인들의 경우는 직접 피해본 한 가정 문제에만 불과하지만 학생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장차 이 나라의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하며 이 사회의 운명을 양어깨에 메고 나가야 할 그들이기 때문에 피해 범위에 있어서는 다르다 하겠다. 학생들은 그러한 놀이 시간에 실험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도서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책을 읽어도 우리에게는 선진국의 학생에 따라가기 어려운 여건이다.
물론 그렇다고 공부만 해야한다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놀이 할 시간이 있으면 운동도하고 과외 활동 등 건전한 취미 생활을 익혀 두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아직은 비록 그 수가 적다 하겠으나 방심할 문제가 아니다. 액수에 있어 적다하여 넘겨서는 안 된다. 장차 이러한 퇴폐적인 풍조가 학원 사회의 고질적인 인습으로 굳어져 버리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워진다. 나쁜 버릇은 빨리 번지기 쉬운 법이다.
「상류 부인」의 도박 사건이 결코 학원의 문제와 무관한 것만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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