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hi] 빅토르 안현수, 금메달 셋 동메달 하나 … 러시아 20년 만의 겨울올림픽 1위 이끌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우나리

2014 겨울올림픽 남자 쇼트트랙은 빅토르 안(29·한국명 안현수)의 독무대였다.

 빅토르 안은 22일(한국시간)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팰리스에서 끝난 남자 쇼트트랙에서 500m·1000m와 5000m계주를 석권했다. 남자 쇼트트랙에 걸린 4개의 금메달 중 3개를 휩쓸었고, 1500m에서도 동메달을 따내며 전 종목에서 시상대에 올랐다. 한국 대표로 뛰었던 2006년 토리노 대회 이후 8년 만에 다시 3관왕을 해냈다. 그는 역대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금메달 6개를 획득해 최다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노메달에 그친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으로서는 참으로 뼈아픈 일이다.

 러시아에서 그는 ‘쇼트트랙의 신(神)’ ‘쇼트트랙의 왕’으로 불린다. 폭발적인 스퍼트, 링크 안팎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신기에 가까운 주법, 상식을 뛰어넘는 전략…. 3박자를 겸비한 그를 따라갈 경쟁자는 없었다. 맨 뒤에서 어슬렁어슬렁 기회를 노리다가 단숨에 치고나가 결승선까지 통과해 버린다. 그의 레이스는 8년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상대는 알면서도 당했다. 5000m계주에서 러시아는 처음과 끝을 빅토르 안에게 맡겼고, 그는 기대에 부응했다. 부친 안기원(57)씨가 “현수는 쇼트트랙을 위해 태어난 아이”라고 자랑할 만했다.

 개최국 러시아는 ‘빅토르 안 효과’를 톡톡히 봤다. 러시아는 겨울 스포츠 강국이지만 지금껏 쇼트트랙에서는 금메달은커녕 동메달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금3, 은1, 동1개를 따냈다. 빅토르 안 같은 선수가 없었던 여자 쇼트트랙에서 러시아는 이번에도 노메달이다.

 만일 빅토르 안이 귀화하지 않고 한국 대표로 같은 성적을 냈다면, 러시아는 금 13개가 아니라 10개가 돼 최다 금메달의 영광을 노르웨이(11개)에 뺏긴다. 1994년 릴레함메르 대회 이후 20년 만의 종합 1위도 불가능했다. 반대로 한국은 금 3개가 아니라 6개가 되면서 톱10을 지킬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쇼트트랙은 비인기 종목이었지만 이젠 아니다. 빅토르 안이 링크에 등장하거나 전광판에 얼굴을 비추면 관중은 “빅토르”를 연호하며 크게 환호했다. 알렉세이 크라프초프 러시아빙상연맹 회장은 “표를 구하려고 경기장 바깥에 줄 선 사람이 많다. 지상파 TV에서 쇼트트랙을 생중계했다. 빅토르 덕분에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대표팀 동료인 블라디미르 그리고리예프(31)는 “빅토르와 함께 운동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그 덕분에 상상도 못했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경기장 밖에서도 빅토르 안은 화제의 중심이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10일 “원래 빅토르가 미국으로 가길 원했으나 시민권 획득 절차가 어려운 데다 재정적인 뒷받침에 대한 확실한 보증도 없어 러시아 국적을 택했다”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교육·문화 분야 업무보고에서 “안현수의 귀화가 파벌주의, 줄세우기, 심판부정 등 체육계 저변에 깔려 있는 부조리와 구조적 난맥상에 의한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빅토르 안은 22일 일정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자청해 “다른 문제가 있어 귀화를 한 건 아니었다. 오직 내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고 싶어 귀화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파벌은 있었지만 그게 직접적인 귀화 이유는 아니었다”면서 “러시아에서 나를 많이 신뢰해줬다. 나를 믿어주는 곳에서 마음 편히 운동하고 싶어 온 것이다”고 말했다.

 빅토르 안의 여자친구 우나리(30)씨도 화제를 모았다. 우씨는 올림픽 전부터 러시아빙상연맹으로부터 올림픽 AD카드를 발급받았다. 빅토르 안은 “결혼식만 안 올렸을 뿐 우리는 이미 한국에서 혼인신고를 한 부부다. 외국에 와서 큰 힘이 돼 준 사람이다. 내가 좋은 성적을 내서 그동안 내 옆에 있어준 사람이 더 힘들지 않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소치=김지한 기자

쇼트트랙 유일한 올림픽 6관왕
박 대통령 '부조리 조사' 이끌어 내
"파벌이 귀화 직접적 원인 아니다"
우나리씨와 이미 한국서 혼인신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