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플레이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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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는 때때로 『슬럼프에 빠졌다』는 말을 쓴다. 의기소침한 상태를 말한다. 원래는 눈(설)이나 얼음을 잘못 밟아 그 속에 빠지는 것을 말할 때 슬럼프라고 한다. 진구렁이나 수렁에 빠지는 경우도 역시 슬럼프다.
이 말은 경제용어로 전용되어 불황으로 주가가 폭락하거나 물가가 떨어지는 경우에도 쓰인다.
근년 세계경제의 이상현상과 함께 『슬럼플레이션』이라는 신용어가 탄생, 흥미를 자아낸다.
Slump-flation이라고 표기한다. 슬럼프와 인플레이션이란 두 단어의 합성어.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73년 9월이었다. 당시 선진제국은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면서 어느 때 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이때 영국의 권위주간지인 이코너미스트는 세계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경기전망을 한일이 있었다. 인플레이션의 과열로 인해 호경기는 결국 슬럼프·다운되어 세계인 대공황이 닥쳐 올지 모른다고 예고한 것이다.
이코너미스트 지는 연간 10%이상의 높은 진행률을 나타내고 있는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경기동향을 한마디로 슬럼플레이션이라고 표현했다.
비슷한 용어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말도 있다. 스럼플레이션보다 앞서 만들어졌다.
스태그네이션(정체=경기 후퇴)과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진행되던 1970년부터 71년 사이의 경제상황을 표현한 말이다.
그러나 스태그네이션은 그 뜻과 마찬가지로 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 말에 비해 슬럼프·다운은 진구렁 속에서 발이 점점 아래로 빠져 들어가는 동적인 국면을 나타낸다. 그 의미의 강도로 보아 슬럼플레이션은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절박하고 또 위기감을 준다.
최근 포드 미국대통령은 이런 스럼플레이션이란 심각한 국면에 있는 미국의 경제를 구출하기 위해 특별조치를 발표했다.
미국은 지금 연14%의 인플레이션에 휘말려 있으며, 한편으로는 대공황(1930년대)이래 최악의 슬럼프에 빠져 있다. 주업률도 6%는 벌서 넘고 7·1%에서 다시 8%로 육박하고 있다. 포드 대통령은 그런 경기후퇴를 막기 위한 획기적인 감세조치를 취했다.
그 하나가 금년 봄에 물어야 하는 지난해의 개인소득세를 12%나 감하기로 한 것이다. 또 법인투자세의 공제률도 현행의 4∼7%에서 12%로 인상했다. 에네르기 자립달성을 위한 일진의 절약 장려책도 발표했다.
환자에겐 투약도 중요하지만 그 자신의 심리적인 상태가 보다 중요하다. 투병의지는 회복을 재촉해 주는 것이다. 포드의 시책은 의기소침한 미국경제에 얼마나 투병의지를 불어 넣어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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