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hi] "안현수는 프리랜서 올림피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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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헌장.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는 반드시 그 나라를 대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이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한 나라를 대표했던 국가대표 선수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국적을 바꾼 뒤 다른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출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여름올림픽에서 시작된 이런 흐름은 겨울올림픽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워싱턴포스트(WP)가 18일자 1면 기사로 국적과 올림픽을 다뤘다. ‘소치 겨울올림픽에서 국적보다 경기 자체에 주목한 선수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WP가 중심 인물로 다룬 건 빅토르 안(한국명 안현수)이었다. 기사는 빅토르 안의 금메달 장면으로 시작하고 있다.

 “빅토르 안은 쇼트트랙 1000m에서 1위를 한 뒤 러시아 기를 들고 트랙을 한 바퀴 돌았다. 관중석에선 ‘빅토르, 빅토르’를 외쳤다. 한국에 금메달 3개를 안겼던 안현수는 4년 전 한국을 떠났다. 전설적인 록가수인 한국계 러시아인 빅토르 최의 이름을 따 빅토르 안이 된 뒤 소치 올림픽에서 새로운 조국 러시아에 금메달을 선사했다.”

 WP는 여름올림픽의 경우 중국의 탁구선수들이 자국 내 치열한 경쟁을 피해 이웃 국가로 귀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 선수로 뛴 4명은 중국에서 귀화한 선수라고 했다. 중동 산유국인 카타르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앞두고 역도 강국인 불가리아에서 8명의 역도선수를 100만 달러에 영입한 사실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이번 소치 겨울올림픽 선수들 중에도 이런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WP는 이들과 빅토르 안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고 했다. 이들의 경우 출신 국가의 에이스가 아닌 데다 메달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반면 빅토르 안은 이미 세계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이면서 한국에서 재능을 발휘할 수 없는 사정을 피해 돈이 동원된 인센티브 경쟁을 거쳐 국적을 바꿨다고 했다. 그런 만큼 기존의 올림픽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용병선수’라고 했다.

 특히 빅토르 안이 한국에서 외면당한 뒤 러시아·미국 등으로부터의 러브콜을 거쳐 러시아에 귀화한 과정을 다루곤 “빅토르 안은 먼 훗날 올림픽에 프리랜서 시대를 연 장본인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가를 위해 뛰는 경기인 올림픽이 점점 경기를 위해 국적을 바꿀 수도 있는 ‘패스포트 올림피안’(여권을 바꿔 가며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로 넘쳐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남북전쟁 후 전 재산을 배낭에 넣고 북부에서 남부로 이주한 백인들을 일컫는 ‘카펫배거(낭인)’란 용어도 썼다. WP는 기사 말미에 박근혜 대통령이 빅토르 안으로 하여금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게 한 한국 스포츠계의 부조리를 조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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