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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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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어머니의 품속을 잊지 못해서 나의 목을 휘어 감고 잠자던 귀염동이 치훈이가 몇십년 동안 바둑의 한길만을 걸어온 대선배 기사들을 상대로 정정당당히 겨루고 또 이겨서 끝내는 정상의 목전까지 오다니 정말 꿈만 같다.
흔히 어렸을 때 천재나 신동이라고 불리던 아이는 주위 사람들의 과대평가나 자만심이 앞을 가로막아 끝내는 한 개의 노리개 감으로 끝나는 예가 많았다고 생각된다.
지금도 외부와의 접촉에는 엄격한 한계를 두고있다. 지금 본국에서 각 신문과 TV 등이 치훈이를 소개하고 있는 사실도 치훈이는 모르고 있다. 대승부를 눈앞에 두고 치훈이에게 정신적인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배려에서다.
기사로서 치훈이는 이미 초일류라고 할 수 있다. 형인 나도 전문기사이긴 하지만 이제는 그의 발 밑에도 따라갈 수가 없다. 형으로서 치훈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었고 이제는 바둑도 지도할 수 없게 되었지만 한가지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부모형제와 같이 생활을 해보지 못한 쓸쓸한 과거와 현재가 장래 치훈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걱정이다.
될 수만 있다면 아버지 어머니를 모셔다가 가족적인 분위기를 맛보게 하>고싶고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이것밖에 없으며 또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재 나나 치훈이에게는 그러한 힘이 없으며 그날이 언제 오게 될지 그날까지 아버지어머니가 건강하게 계시길 빌 뿐이다.
치훈이가 13세 때 여권기한연장이 병역문제로 잘 안되어 당황했던 적이 있었다.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치훈이는 어느 틈에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귀국할 비행기표를 예약해 놓아 대 소란이 일어났다. 요즘도 여권기간이 끊겨 있지만 이 문제는 내가 일체 말을 안 하니까 그는 허가가 나온 줄 알고 있을 것이다.
지난 12일 임해봉9단을 이김으로써 >도전자로 결정된 후에도 치훈이는 매주 한 두 국을 소화해야 하는 「스케줄」때문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조일신문사가 주최하는「프로」10걸전에서 전 일본「아마추어팬」의 인기투표에서 16위로 입선(16위까지 입선자는 본선부터 대전)하는 등 인기가 높아 TV출연이 l주일 한번정도 있는데다 지방순회까지 강행해야 되는 것이다.
치훈이는 지금까지 최연소입단, 초단에서 6단까지 최단거리 승단, 최연소 선수권보지자(동경 12「채늘) 신예「토너먼트」우승), 최연소공식전도전자 등등 허다한 기록을 세웠다. 현재와 같은 성적을 유지해 나가면 하루하루가 모두 신기록의 수립이 되는 셈이다.
바둑이란 초장거리「마라톤」과 같고 60세가 넘어서도 「타이틀」을 획득하는 기사가 있으니 만큼 안심은 절대 있을 수 없다. 당면목표인 「사까다」선수권자를 넘어뜨리는 것은 물론 그가 세운 54회 우승기록을 깨뜨리고 일본의 전 「타이틀」을 획득함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의 자각과 노력이 필요함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본국 바둑「팬」의 절대적 성원과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참고로 이번 제22기 일본기원 선수권전(동경신문·북해도신문·서일본신문 공동주최)에서 치훈이가 물리친 전적은 다음과 같다.
①소산정남 9단에 집백 불계승 ②영목오량 7단에 집백 10호반승 ③삼오유효 7단에 집흑 2호반승 ④판구륭삼 6단에 집흑 불계승 ⑤석정방생 8단에 집흑 불계승 ⑥소림광일 7단에 집백 1호반승 ⑦도촌준광 9단에 집흑 불계승 ⑧염곡일웅 8단에 집백 불계승 ⑨가전극사 9단에 집백 반호승 ⑩석전방부 9단에 집흑 4호반승 ⑪대죽영웅 9단에 집백 반호승 ⑫임해봉 9단에 집흑 4호반승.
12년 동안 일본에만 있었던 필자가 서투른 글솜씨로, 그것도 12년 동안의 일을 단 6회에 얼마나 동생 치훈이를 정확하게 소개했는지 의문이며 또한 독자에게 미안스럽게 생각한다. 23일부터(일부지방 24일) 연재될 임해봉 9단과의 결승전 기보에서 더 보충했으면 한다. <끝> 동경에서 조상연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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