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C의 공동 경제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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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유류파동·자원파동을 고비로 해서 구주공동시장(EEC)은 분열의 위기조차 겪은 터이나 이제 다시 재출발의 계기를 찾고 있다.
9일부터 2일간「파리」에서 열린 EEC 제7차 정상회담은 EEC의 새로운 전진을 위한 다섯가지 과제를 협의했으나 80년의 정치적 통합을 목표로 하는 EEC 제도 개혁에는 실패한 반면, 당면한 경제정책의 공동 추진에는 약간의 진전을 보았다는 것이다.
EEC의 전진을 위해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서 공통 경제 정책·영국 가맹 조건의 재협상·「에너지」정책·지역개발기금창설, 그리고 기구 개편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점은 주지된 사실이나, 어느 항목도 아직까지는 이해 관계의 상위 때문에 만족할 만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손쉬운 경제 협조에서 시작해서 경제 통합을 이룩하고 그를 기반으로 해서 80년에는 정치적 통합을 실현시킨다는 당초의 「스케쥴」은 영국을 주축으로 하는 구주 자유무역권(EFTA)을 흡수함으로써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경제 통합의 시간표에 차질이 생겼으나 그런대로 구주 계산 단위의 창설이라는 통화 통합의 제1단계 조치는 실현할 수 있었다. 이는 통화 통합의 모체이며 기준이기 때문에 통화 통합을 예고하는 성과였다.
통화 통합이 이룩되면 다음 단계로서 구주의회의 실질적 강화, 구주예산의 확대를 통해서 개별 국가의 주권이 제한되는 반면 개별 국가의 이익에 우선해서 EEC전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책추진체가 마련된다는 「스케쥴」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스케쥴」을 교란시킨 것은 다름 아닌 원유파동이다.
원유파동으로 「에너지」문제에 대한 대응책에 분열 현상이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이태리·영국·「프랑스」의 국제수지가 근본적으로 악화됨으로써 통화 협조에 틈이 벌어지고 결국 공동 「폴로트」 정책에서 이태리·「프랑스」·영국 등이 이탈하는 후퇴 현상이 일어나 통화 통합 작업이 공중에 뜨고 말았다.
그러나 EEC의 무역 구조는 역내 거래가 70% 수준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유류 파동 이후의 이해 상충이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이미 실현시킨 경제 통합 과정을 후퇴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경제정책을 공동으로 집행하지 않을 때 야기될 혼란과 손실을 감당할 수 없어 경제면에서 협조하지 않을 수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경제 정책에 있어서 공동으로 보조를 맞출 것에 합의한 것은 지극히 당연할 뿐만 아니라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사리를 이같이 평가한다면 비록 시간은 걸리겠지만 역내 경제 문제라 할 공통 경제 정책, 영국의 가맹조건 재협상, 지역개발기금 문제는 결국 타결될 것이다.
다만 「에너지」 문제와 얽힌 정치 관계만이 쉽사리 타결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키신저」 구상이라 할 소비국 기구를 매개로 한 원유가 인하를 추진하는 미국의 계획에 대응해서 「프랑스」는 산유국·소비국 합동회의를 추진함으로써 다른 의미의 「이니셔티브」를 쥐려 하고 있다.
그 동안 미·서독, 미·일, 미·소 정상회담이 연이어 이루어진 반면 불·소 정상회담에 이어 미·불 정상회담이 곧 열릴 계획이므로 그 사이에 어떤 정치적 복선이 형성되고 있는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다 「에너지」 문제의 해결 방식 여하에 따라서는 EEC내의 새로운 정치 관계의 출현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요컨대 EEC는 경제적으로 서로 협조해야 할 불가피한 상황 속에 있는 것만은 확실하나 미국과 EEC, 그리고 「프랑스」와 소련 및 「아랍」권의 관계가 각각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서 정치 상황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서 「에너지」 정책의 향방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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