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연된 침 사법 안 논란|침구 계와 한의학계 맞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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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12년 동안 의료계에 물의를 빚어온 침 사법 안이 요즘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몇 번이나 국회에 상정이 폐기된 이 법안이 이번에 다시 심의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나라에서 침구사제도가 없어진 것은 지난 62년 국민의료법이 의료법으로 개정되면서부터다. 한의사이외에 침술의 신규면허를 사실상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현재 국내의 면허를 가지고 있는 침 구사는 2백여 명으로 모두 일제 때 조선총독부령으로 면허를 원은 기득권자뿐이다. 해방 후 국민의료법이 개정되기까지 관인학원에서 배출되거나 개인 수업을 받은 5천여 명의 침술 가들은 면허가 없는 사람들이다. 자연히 이들은 음성적인 시술을 벌이게 되고 이것은 의료업계의 큰 문젯거리가 되어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 의료사고의 86·4%가 돌팔이 침 시술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한의학부와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에서는 침구학을 정식교과목으로 채택하여 6년 간 배우고 있으며 한의사 자격시험에서도 다루고 있다.
이번 침 사법 안의 주요골자는 4년제 대학정도의 양성기관을 수료한자가 국가시험을 거쳐 침 사 면허를 얻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전국관인 침구학원 동창회 이유관 회장은 국내에서 긴 역사를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침술을 양성화함으로써 무면허침술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침술은 한의학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한의사의 업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면허침구사모임인 대한침구사협회 임수성 회장은 침술의 계승과 후배양성을 중요한 찬성이유로 들고 있다.
한편 이 법안을 반대하고있는 한의학계에서는 침 사법 안이야말로 한마디로 합리적인 의료제도와 과학적인 보건 행정에 위배되는 시대에 역행하는 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대한한의사협회 한요욱 회장은 현 의료법의 규정이나 교육제도에서 침구술을 한의학의 분야로 규정짓고 있는데 새삼스럽게 침 사법 안을 따로 독립법안으로 제정한다는 것은 의료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며 4년제 양성기관이란 표현이 애매하여 교육이념에 어긋나는 사이비 교육기관의 양성을 조장할 우려가 크며 과거 배출된 무면허 침술자의구제에 치우친 인장이 깊다고 말하고 있다.
이 법안을 둘러싼 침구 계와 한의학계의 열띤 대립은 침술에 대한 이권다툼이라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그러나 의료법안의 제정은 국민보건과 의료제도 및 행정의 합리화를 목표로 하여야 하며 결코 일부의 이익을 위해서 행해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
현 의료법은 국민의 건강을 보호 증진키 위해 62년도에 개정된 의료인의 종합 법이다.
이때 접골사·안마 술자 등 유사의료 업자 제도와 함께 침 사 제도가 없어진 것이다.
침술의 발전을 위해 침술을 한의학으로부터 독립, 침사 제도를 부활시켜야 된다는 주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없으며 국민건강에 위배되는 퇴행변화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기왕 침구 사 면허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의과 대학에서 연구와 후배양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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