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3)도둑의 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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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도둑의 역사는 아마 민간의 역사와 평행해 따라온 줄 안다. 잔인 무도한 살인강도부터 좀도둑·소매치기 등…. 또 그 도둑질을 하게 된 동기도 각양각색이다. 저 유명한 소설「레·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은 빵 한 조각 때문에 도둑질을 했다. 또 가깝게는 얼마전 사회면을 떠들썩하게 했던 화곡동 살인사건은 내연의 처에게 면사포를 한번 씌우기 위해 그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이렇듯 인간은 어떤 궁지에 다다르면 인간의 탈을 벗는다. 그러나 어떻든 도둑질을 해야 될 뚜렷한 목적의식이 있었다.
물론 도둑에게 양심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비정한 도심 속에서도 마지막 일말의 인간성을 엿볼 수 있을 때가 많다. 고학생의 등록금을 훔친 소매치기가 돈을 되돌려 준다든지, 여권을 소매치기했던 범인이 오도가도 못하는 피해자의 딱한 사정을 풀어주기 위해 훔친 여권을 우체통에 넣어주는 것 등이 그러한 경우다.
그러나 여기 웃기기에는 너무 얌체고, 욕심치고는 너무 하잘 것 없는 정말 치사한 도둑들이 있다. 숫제 배고파 쌀을 한줌 훔쳤거나 연탄 한 덩이를 들고 뛰었다면 절실하기나 하겠다. 신문을 보니까 안전을 위협하는 전철부속 도둑 이야기가 나있다. 국내에서는 생산이 불가능하며 그것만은 외국산이라야 한다는 부속을 며칠 사이에 1백여개나 도난 당했다 한다. 그것은 전철이 달리는데 없어지면 자동신호기에 영향이 있다 한다. 그것이 더구나 사들일 때는 2만원을 넘고 팔려면 2∼3백원밖에 못 받는 물건이라 한다. 도심을 충족시키기에도 너무 하잘 것 없고 그러면서도 수천 명의 생명을 좌우하는 전철의 부속을 아무 거리낌없이 훔쳐 가는 도심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아무리 하찮은 못 하나, 나사 하나라도 그것이 공인을 위한 필요에 의해 장치된 것을 별로 큰 죄의식도 없이 훔치는 그 마음이 실은 은행금고를 터는 도둑보다 어느 의미에서는 더 가증하다고 할 수 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도 있다. 남이 안본다고, 큰게 아니라고 엄연히 제것 아닌 것에 손을 댄다는 것은 정말 더러운 마음이다. 길가에 쇠로 된「맨홀」뚜껑을 밤사이에 훔쳐가 집의 애가 빠진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시궁창내 나는 옷을 빨아주면서 노여움보다 슬픔이 가슴을 메었다. 이건 가난하기 때문일까? 아니 이러기 때문에 우리는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라고 단정했다. 가난은 죄가 아니다. 그 가난보다 더 무섭고 못 견딜 노릇이 이토록 살벌한 가난한 마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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