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파리」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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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거운 짐을 들고 이 나라, 저 나라로 돌아다니면서 하루 빨리 도착되기를 기다렸던 곳은 「파리」다.
그러나 막상 「파리」에 발을 디뎠을 때 나는 「올드·미스」가 날짜를 잡아놓고 오래 기다리던 결혼식에 나섰을 때의 묘한 기분이 들었다. 책·영화·문학을 통해 기대했던 「파리」가 실제로는 어떨는지 겁이 난 것이다.
체류기간동안 제일 불편을 느낀 일은 옷 입는 일. 계절에 알맞게 입고 나가면 살 속으로 스며드는 추위 때문에 덜덜 떨리고 따뜻하게 입고 나가면 예상외로 기온이 높아져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거리는 시커먼 털 달린 「코트」를 벌써부터 입고 나선 부인들로 가라 앉아있다. 밝고 가벼운 옷을 맑은 하늘에 맞춰 입던 한국에서의 습관대로 옷을 입다가는 촌뜨기를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옷만 사치스럽게 입는 것도 문제지만 「그린」색 일색으로 장식된 「쇼·윈도」의 유행과 무관하게 검게 만 입고 다니는 것도 우울해 보인다.
도시의 가운데를 지르는 「센」강은 「파리」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아름답지만 강 하나만을 보면 한강보다 나을 것이 없다. 강둑과 강변도 좁기만 하다.
「텔리비젼」이 그렇게 보급되어 있고 판을 쳐도 명화가 상영되는 영화관에는 여전히 줄을 선 인파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고 「파리」의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또 대통령 선거 기간 중 「텔리비젼」과 신문을 빼놓으면 선거가 진행중이라는 것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조용했던 분위기, 「지스카르-데스텡」이 취임 후 거리의 군중 속에서 각료들과 악수를 나누던 여유 있는 모습 등도 자유가 허용되는 「파리」의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콩페뉴」 등 「파리」의 교외로 나서니 「밀레」의 그림풍경 같은 「프랑스」 특유의 전원풍경이 펼쳐진다.
이 「프랑스」의 전원을 음미하면서 나는 역설적이지만 「파리」는 이미 「프랑스」가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노테르담」같은 사원은 「비엔나」에도 「본」에도 있으며 개선문과 「에펠」탑에서 「프랑스」를 느끼기에는 이미 이 문화재들은 신선한 감각을 잃고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불교학과 비교될 수 있는 것 같다. 불문학사에는 영국의 「세익스피어」나 독일의 「괴테」·「러시아」의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거장이 없다.
그러나 「프랑스」의 작가들은 문학사에서 제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중요한 작가들인 것이다. 거장을 배출하지는 않았으나 세계 문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있는 불문학과 감정과 논리를 조화시킨 묘한 기질을 지닌 「프랑스」인들, 또 조화의 미를 지닌 「파리」는 모두 흡사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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